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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의 계룡산은…

물소리~~^ 2013. 9. 15. 12:14

 

 

 

관음봉

 

 

관음봉 오르는 길

 

 

이른 아침 6시, 계룡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중부지방으로 가까이 갈수록 비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 내리는 날의 또 다른 감흥을 기대하며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1시간 40여분을 달려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비에 대비한 단단한 차림을 하고 8시부터 천장골을 따라 등반을 시작했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고, 숲길은 날씨 탓인지 녹음 탓인지 조금 어두웠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진기였다.

 

비 때문에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지만 한 번씩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스스로 플래시를 터트리니 낭패다. 이리저리 돌려보면 카메라 상태를 변경할 수도 있겠지만 비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 순간, 오늘 산행은 사진을 포기하기로 했다. 사진 찍는 일 조차 어쩜 내 과시욕인지도 모르는 일, 그만 딱 접고 묵묵히 걷기만 하자고 다짐하니 마음이 참으로 가볍다. 간간히 보이는 꽃들도 비에 함초롬히 젖어있다. 오늘만큼은 입 다물고 조용히 묵상하고 싶다면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심사다.

 

나무들은 열심히 제 몸을 씻으며 흘리는 초록 물을 나에게 던져준다. 아, 그렇구나. 저 나무들은 지금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음이야. 비에 초록을 녹여 초록잉크 만들어 그동안 간직해 온 이야기들을 지금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었다. 시인도 되고 수필가도 되고 소설가도 되는 숲속의 나무들~ 등산로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물소리도 점점 그 목소리를 높여가며 동참한다. 그 이야기들이 무척 궁금했지만 오늘 나도 이렇게 비 맞고 열심히 걸으니 곧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마음이 조금씩 들떠오기 시작한다. 숲길의 속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서도 초록글씨가 번지고 있다.

 

자연 속을 말없이 걷는 것이 얼마나 안온하고 행복한 일인지… 자연에 파묻혀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무리 오랜 시간 자연 속에 머물러도 질리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매일 먹는 밥,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듯, 자연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임에 틀림없으리라.

 

지나치는 풍경에 마음 쏠리어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들고 찰칵찰칵 해 보았지만 역시나 역부족, 풍경들에 향한 내 마음임을 그냥 전해 줄 뿐 이다. 간혹 우거진 나무 밑을 걷노라면 빗방울이 성글긴 했지만 대신 어둠에 빛 조절이 안 되는 곳! 한발 한발 천천히 오름을 위해 발을 옮겨 놓으며 물소리, 빗소리에 귀를 씻고, 청정한 나뭇잎들에 눈을 씻고 그들이 전해주는 향기에 마음을 씻노라니 내 몸은 저절로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길을 찾아 걷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붙잡기에도 분에 넘친다.

 

비를 흠뻑 맞으며 1시간 30여 분을 걸어 남매탑에 도착!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정경이 아닐까. 말로만 들었던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우리의 산야 곳곳의 아름다움은 전설을 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들이 이 깊은 산중에도 있었음이다. 옛날 사람들이 보고 느꼈던 것들을 오늘 내가 다시 만 날 수 있다는 그 순간의 희열은 힘들게 걸어온 시간들에 충분한 보답이 되고도 남는다. 이런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길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남매탑에서 삼불봉을 오르는 길, 길은 점점 가파름을 더해가고 하늘은 비를 뿌렸다. 어느 순간 흰 구름으로 온 산을 감싸버리기도 하면서 우리의 눈을 끌어간다. 구름은 흩어져야 아름답다고 옛사람들은 읊었었다. 그렇다면 저 구름들은 오늘의 나뿐만이 아닌 옛사람들에게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세월 따라 변하는 건 사람뿐인가 보다. 곳곳의 소나무의 자태가 아름답다. 높은 곳에서 바람과 추위에 맞서 자라야하는 그들은 그렇게 제 모습의 변형으로 순응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보이는 모두가 아름답다.

 

날씨 탓으로 멀리 시야는 보이지 않았고 오직 눈앞의 풍경만이 보일 뿐이다. 어쩜 그 이치마저도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멀리바라보다 낭떠러지의 위험을 감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고, 가까이 보이는 풍경들의 참모습을 찬찬히 음미해보라는 권유일 수도 있었다.

 

삼불봉을 지나 우리는 계룡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자연성능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최고봉에 오르기 위해 산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하지만 오르내림의 심한 경사마저 우뚝 솟은 바위들의 자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불평을 말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위해서는 지나는 길목의 모든 것들을 수용해야 하는 법이다. 목표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이치를 어쩜 이 산에서는 몸소 가르쳐주고 있음이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봉우리들이 내려주는 산자락에는 구름들이 숨었다 나왔다하며 비경을 보여준다. 줄지어 나란히 선 봉우리들은 모두 높음보다는 저 아래에 닿기 위해 키를 낮추며 서로 다정하다. 관음봉을 오르는 길! 멀리서 바라보아도 아찔하다. 그냥 그대로 산기슭을 따라 등산로를 이어 놓았다. 철재계단이 끝나니 다시 바위 옆에 난간만을 세워놓고 등산로란다. 비에 젖은 바위가 얼마나 미끄러운지… 기다시피 오르면서 눈 맞춤한 산구절초~~ 참으로 청초한 모습이었지만 내 몸이 허공에 있는 듯싶은 무서움에 감히 그 모습을 담지 못했다.

 

드디어 관음봉(816m)에 도착 바람이 심하다. 관음봉 표시석 마저 날 선 바위위에 세워져 있으니 미끄러워 오르지 못하겠다. 겨우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조심스레 내려와 바람 잦은 길목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우리와 반대편에서 올라온 산악회소속의 일행들이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산도 잠시 놀란 듯, 하지만 모두를 포용하며 말이 없다.

 

비가 서서히 개는 듯싶다. 하지만 우리의 옷차림은 여전히 비에 푹 젖어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비옷만이라도 벗으니 훨씬 가볍다. 이제 내려오는 길, 간간히 해가 나기도 했지만 많은 비에 등산로 곳곳이 계곡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작은 폭포 큰 폭포를 형성하며 저마다 이유 있는 몸짓으로 큰 계곡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저 물들은 어떻게 큰 계곡을 알고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신비스럽기만 하였다. 그 계곡물을 흘러 큰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은선폭포의 위용을 제대로 만났다. 계룡산 비경 중 하나인 은선폭포는 평소에는 수량이 적어 그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니 나는 분명 큰 복을 받은 사람이리라. 계곡 따라 흘러내려온 물들은 갑자기 수직으로 서있는 바위를 만나 눈 깜짝할 사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비명소리가 한데 합쳐져 우렁찬 물소리로 들려오고 있었고 떨어진 곳의 소에서는 물보라가 튀어 오른다.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서 한 숨 돌리며 또다시 아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거침없는 물들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모든 것들에 순응 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 내가 이 산을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 했듯, 저들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길고 긴 계곡을 이루며 주차장까지 나와 벗하며 흘러내린 맑은 물이 너무 맑아 서러웠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픔이기에…

 

  

은선폭포

 

 

동학사주차장 옆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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