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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그리움을 품은 가을 열매

물소리~~^ 2013. 9. 25. 13:49

 

 

 

 

댕댕이덩굴

 

 

   비 지난 하늘이 참으로 곱다.

   고운 하늘아래의 가을이 이제야 자리를 잡은 듯 자꾸 익어간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어느새 내 안으로 깊이 스며들며 소맷부리를 내려주니

   닿을 수 없는 그리움 속으로 나의 고운 인연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아직은 푸르기만 한 숲의 나무들이

   아침 햇살에 길게 드리워진 제 그림자를 언덕길에 나지막하게 내려놓은 은은함으로

   더욱 정겨운 에움길을 다 오른 후,

   한숨 돌려 내려가는 길 오른쪽을 끼고 도는 산자락에는 무성한 밤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밤나무 자체만으로도 아주 풍성한데,

   밤나무 잎이 진초록이라면

   그 보다 조금 연한 녹색의 밤송이들이 망울망울 달려 있는 모습이 참 귀엽다.

 

   나무와 열매는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오가는 나의 몸과 마음을 유혹하지만

   나는 아직 익지도 않은 것이… 하며 애써 유혹을 뿌리치는 여유를 부려본다.

 

   굽은 길따라 산자락에 바짝 붙어 차를 돌리니

   막 피어난 억새풀이 차체를 '후드득' 치면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가녀림 대신 거친 이름을 가진 억새의 몸짓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올 가을에는 어느 여인의 맘을 울리려고 그새 고개를 내밀고 있는지…

   어느덧 가을의 정취가 하나 둘 내 곁을 스치며

   세월의 흐름을 인식케 하고 있음은 정녕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인가 보다.

 

   무언가 진한 청색 열매가 대롱대롱 달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댕댕이덩굴!  야무지면서도 단아한 열매모습에 마음이 확 쏠린다.

   뜻밖의 사람이나 사물을 대 했을 때,

   그 대상에서 어떤 정겨움이 잔뜩 묻어나올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 중에는 어느 말이 제일 어울릴까를 고심해본 적이 있는지,

   난 왠지 댕댕이덩굴의 열매모습만 보면 다정함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정감이 차오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모양도 색도 앙증맞고, 치렁치렁 달려 있는 모습도 너무 멋있다.

   너무 아까워 차마 꺼낸 적 없던 기억들이 덩굴 따라 반짝이며 말을 걸어오는 듯싶은

   망울 하나하나가 너무 예뻐 차마 만지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은 나를 추스르게 한다.

 

   자신의 모남을 얼마만큼 다스려야 저리도 둥근 모습이 될까…

   기다림이란 얼마나 간절한 누구의 것이기에

   이렇게 모난 마음을 둥글게 갈고 닦으면서 몸마저 예쁘게 치장하고

   떳떳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기다림에 보답 하는 것 일까.

 

   이제 막 풀 먹인 고운 갑사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밤바람에도 풀기를 버리지 못하고

   의연히 익어간 열매가 너무 예뻐 그냥 꼭 끌어안고 싶다.

 

   가을 빛에 익어가는 숲속의 열매들이 추로수(秋露水)를 머금은 보석처럼 빛이 난다.

 

   가을이면

   늘 듣던 음악도, 좋았던 시구도, 제목이 눈길을 끌던 책도 욕심이 나곤 하는

   나의 감성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는데

   오늘은 마냥 말갛게 보이는 이 빛깔 좋은 보석에 마음을 빼앗기며

   아직은 초가을인 기운을 온 몸에 받아 보면서 사그라지는 마음 한줄기를 세워 본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애잔함이 쓰윽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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