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늘 지녀야할 마음

물소리~~^ 2013. 9. 24. 22:39

 

 

 

 

 

 

   가을이라지만 아직 선득한 바람기운을 느끼지 못하겠다.

   작은 불빛아래 엎드려 책장을 넘기다가

   그대로 돌아누웠다.

   열어둔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어디쯤 달이 있을까

   반쯤 일어나 목을 세우고 바라보았지만 달을 찾을 수 없다.

   온전히 일어나 창에 바짝 얼굴을 대니

   하늘 멀리 이지러진 달이 수줍게 떠있다.

   달은, 성하면 쇠한다는 이치를 하늘 가득 펼쳐 놓고 있었다.

 

   말없는 이치를 읽어보려 응시하는데

   눈앞에 무언가가 어른거린다. 무어지?

   아, 창문에 덧댄 방충망에 달빛이 걸러지고 있었다.

   어쩌나! 깨끗하지 못한 방충망이 순간 부끄럽다.

 

   커다란 방충망을 떼어 욕실 욕조에 세워놓고 샤워기를 틀었다.

   시꺼먼 꼬장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렇다. “꼬장물” 이었다.

   아,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어렸을 적, 밖에서 신나게 놀고 들어와 씻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저 꼬장물 좀 봐라”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그 말이 새삼 그리워진다.

   꼬장물은

   내가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방충망이 흘러내리는 꼬장물은

   방충망이 깨끗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요한 달빛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시커먼 물이었다.

 

   물이 깨끗함만을 고집했다면

   더러움을 씻어 낼 수 없었으리라

   늘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꼬장물에서 배워본다.

   

 

                    #. 꼬장물 : '고장물'  또는  '구정물' 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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