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계절,
얼마 전 전부터 연꽃이 지금 한창일 텐데… 마음 안에 맴도는 생각~
언제나 같은 장소이지만 해마다 찾아가고픈 내 마음도 역시 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꽃이 지듯, 꽃을 만나고픈 내 마음도 차츰 시들어 갈 즈음인
지난 토요일 오후, 전주 다녀오는 길에 일부러 덕진공원을 들렀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연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냥 좋기만 하였다.
휴일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았지만, 3만여 평이나 된다는 연지에 비해
연분홍 연꽃은 듬성듬성 피어있었다.
연밥이 더 많이 보였으니 어쩌면 너무 늦게 찾아온 나였는지도…
늦게 찾아온 나를 반겨주듯 피어있는 연꽃들의 자태가 조금은 뾰루퉁 하였지만
연잎만큼은 싱싱하니 참으로 탐스럽다.
1시간 전에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도 연잎은 물방울 하나 없이 보송하기만 하다.
멀리 보이는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기숙사 건물,
학창시절 뜻 모르게 다녀 간 마음 한 자락, 갖가지 추억들과 함께
연지를 한 바퀴 채 돌기도 전에 다시 비가 쏟아진다.
그냥 그 마음 끌어안고
오늘 만큼은 꽃보다 추억을 함께한 시간이었다고 위로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굵었다 가늘었다하며 나와 함께해 준다.
아무래도 연꽃이 성이 차지 않았나보다.
일요일 일상을 헤쳐 나가는 내내 연꽃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으니 말이다.
그럼과 동시에 내 몸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요즈음 집안 페인트칠이 끝나고 정리를 해 둔 상태이기에
일요일에 할 일이 많이 줄어든 오늘이니 서두르면 시간을 충분히 낼 것 같았다.
청하 하소백련지를 갈 참이다.
드디어 내 마음속으로 계획한 시간을 만들었다.
하소백련지를 찾아갈 때면 언제나 농로를 따라 가곤 한다.
군데군데 자리한 마을과 넓은 평야에서 자라는 벼들을 바라보노라면
옛정취가 가득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 아늑함이라니…
요즈음 시골길도 잘 정돈되어 있기에
자동차로 달리면서 마음껏 눈 안에 풍경을 가득 담아 볼 수 있다.
어느 살뜰한 마음의 주인공인지, 길 가 자투리 땅 한 쪽도 허투루 놓아두지 않았다.
콩도 심었고, 하물며 코스모스나 루드베키아 등, 꽃들도 심어져 있다.
그 중에 절로 핀 개망초들이 텃세를 부리는지 훌쩍 큰 키에 새초롬하다.
그새 벼이삭이 필 만큼 자라난 벼들의 자람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가지런하다.
저 반듯함에서 나온 쌀이라면 당연 일등품이지 않을까.
어느덧 백련지가 멀리 보인다.
아!! 하얀빛의 청순한 연꽃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어쩜 그동안 연지가 더 넓어진 것 같다.
이곳 역시 연꽃들의 만개 시기는 지난 듯~~ 하지만 오히려 한적함이 더욱 좋았다.
한낮의 쨍한 햇볕아래 고고히 피어있는
한 두 송이의 흰 빛이 더욱 고고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꽃에 어찌 사랑이야기가 섞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역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나는 지금 내 앞에 고고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연꽃에게 살짝 물어본다.
우렁이가 연줄기에 알을 슬었다.
우렁이도 연꽃의 청결함을 알아챘을까?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원나라 서울인 연경에 머물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충선왕이 갑자기 고국(고려)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녀에게 사랑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주었다. 이별의 괴로움에 그녀는 충선왕에게 시를 보낸다.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주시니 (贈送蓮花片)
처음엔 불타는 듯 붉었더이다 (初來灼灼紅)
가지를 떠난 지 며칠 못 되어 (辭枝今幾日 )
초췌함이 사람과 다름없어요. (憔悴與人同)
장미도 아닌 연꽃을 건넨 충선왕은 연꽃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장미가 없어 연꽃을 전했을까.
이 이야기는 우리 역사에 전해지는 연꽃에 얽힌 사랑이야기로 유명하다.
불타듯 붉다고 시에서 말했으니 백련이 아닌 홍련이었을 것이다.
붉은빛이 사랑을 의미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인가 보다.
그보다도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고결함을 상징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꽃으로 연꽃만큼 더 의미가 깊은 꽃은 없지 않을까.
충선왕이 떠난 뒤 그녀는 충선왕을 오매불망하였다.
충선왕 역시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신하 이제현을 보내 그녀의 근황을 알아보라 한다.
이제현이 가보니 그녀는 상사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현을 본 그녀는 그 때 충선왕에게 전해 달라며 위의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현은 왕의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하여 그 시를 전하지 않고,
그녀가 젊은이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노라고 거짓으로 말하였다.
왕은 그녀를 잊었다. 1년 뒤
이제현은 그녀가 써준 시를 왕에게 올리며 사실을 말하였다.
충선왕은 이 시를 읽고서,
“만일 그때 이 시를 보았더라면 귀국하지 않고 그녀에게도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하며,
이제현을 책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의 충성과 의리를 가상하다고 칭찬하였다 한다. - 화하만필 참고 -
여름 일요일 한나절
연꽃과 옛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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