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진한 색이었지만, 여름 한낮 뜨거운 햇볕아래서 기다리는 애태움으로
빛이 바랬다는 동정심일랑 거부하는 듯 애초에 주홍빛으로 피어난 능소화!!
푹푹 찌는 폭염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척,
더욱 선연한 빛으로 기다림을 보여 주는 꽃이다.
그 꽃은, 잡을 수 없는 높은 나뭇잎사이에 숨어서도 또다시
발을 드리듯 거미줄에 제 몸을 빤히 숨긴 채,
혼자만의 진한 빛으로 설움을 달래고 있었으니 그만 내 설움에 목이 메고 만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 이다.
나도 한 때 누군가를 늘 촉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그리움을 지녔었을까.
외로움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더 깊은 외로움을 낳는다고 하였으니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감정의 끈이 아니던가.
우리 아버지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지만 꽃을 좋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근무하시던 학교를 언제나 꽃밭부터 가꾸셨기에
우리들 마음도 덩달아 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시절의 막연한 아련함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언제인가 어머니 혼자 쓸쓸히 지내시던 아파트에 찾아 갔다.
그 날 어머니는 나를 아파트 화단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높게 올라가는 덩굴성 식물을 가리키며 능소화 라고 알려 주신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꽃이어서 어렵게 구하여 이곳에 손수 심어 놓았는데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잡초인줄 알고 뽑으려고 한 것을 사정해서 살려 놓았다고 하신다.
그만 마음이 찡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함께 살아가시는 동안에는
어머니 성격으로 아버지께 그리 살갑게 대해 주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그렇게 아버지를 생각하고 계셨다.
돌아보면 한숨뿐인 지난날들 이셨겠지만 이렇게 능소화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 마음 안에 남아 있는 주홍빛이었다.
아련한 빛만큼 아련한 마음 빛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품은 능소화는
단 하 루 밤의 인연이었을 뿐인 임금을 기다리던
궁녀 소화의 마음 빛이 변하여 꽃이 되었다 한다.
아버님을 생각하시며 어렵사리 구한 능소화 한줄기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 화단 한 구석에 키우는 어머니의 주홍빛은
아버지를 대신한 표상이었다.
높은 나무위에 사람 손이 닿지 않고, 보이지 않은 나무 끝에서
아련한 빛으로 꽃을 피우며 남몰래 정념을 사르고 있는 능소화에
그만 내 마음이 쿵! 무너지는 이유는
만나고 싶었던 모습으로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깊숙이 숨겨둔 마음을 기어이 만났다는 반가움일지도 몰랐다.
이룰 수 없는 그리움에 온 몸을 사르다 통째로 떨어져 버리는 능소화~·
꽃을 통해 내 그리움을 만나보며 덩달아 나 역시
내 그리움을 뭉텅 떨쳐내며 또 한 해를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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