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이 되면서 온갖 나무들은 연둣빛 잎을 내 보이며 새로움을 알려주곤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연둣빛이 없지만
난 유독 감나무의 여린 잎 빛을 참으로 좋아한다.
다른 나무들의 빛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빛을 띠기 때문이다.
약간의 갈색을 머금은 빛의 여린 잎과 검은 줄기의 어울림은 고상함으로 비쳐지니
더없이 고결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하여 이른 봄이 되면 난 늘 감나무 잎을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차분히 내리는 비 사이를 달리며 출근하는 길, 괜한 차분함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들에 마음의 정을 듬뿍 나누는데
한층 짙푸름을 내보이는 감나무 잎이 유독 반짝인다. 참 싱싱하다.
저절로 차를 스르륵 감나무 옆으로 디밀고서 내렸다.
한 순간 떠오르는 한 생각에 나는 감나무 잎 몇 개를 조심스레 땄다.
어찌나 보드랍고 유순한지… 차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물기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물기를 닦아주었는데도 윤기 자르르 흐르는 빛은 여전 하였다 .
물기로 인한 윤이 아닌 스스로 발하는 윤이 있어 더욱 탐스러워 보인다.
맞아! 감나무 잎은 잔털이 없고 매끄러워 먹물을 잘 먹는다 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 감나무 잎에 글씨를 썼을 뿐 아니라
감나무를 오덕(五德을) 지닌 나무라 칭송도 했다.
즉 잎에는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문(文), 목재가 단단하여 화살촉을 만드니 무(武),
다 익은 감은 껍질과 속이 똑같이 붉으니 충(忠), 홍시는 노인들이 먹기 좋으니 효(孝),
서리가 내리도록 달려 있으니 절개가 곧다하여 절(節)의 오덕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의미를 붙이기 나름이지만 나로서는
종이가 부족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낸 문(文)의 덕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먹물이 아닌, 굵은 싸인 펜으로 따온 감잎에 글씨를 써봤다.
어쩜~~ 글씨가 매끄럽게 나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한 장의 감잎에 낭만을 담고 있는 아주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런 좋은 느낌을 받기에 옛 사람들이 감나무 잎에 글씨를 썼다고 하나보다.
중국에서 전해오는 앙엽(盎葉)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항아리에 들어있는 잎이라는 뜻이다.
이는 한 선비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감잎에 적어 항아리에 넣어두곤 하였는데
그렇게 모아둔 메모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 조선시대의 이덕무, 박지원 역시 메모광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나뭇잎에 메모를 하진 않았지만
위의 중국고사에 빗대어 자신들의 메모를 모아 만든 책을 앙엽기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글과 높은 지식이 이토록 후대에까지 길이 전해져 옴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자신들의 광휘적 생각을 메모하여
그 생생한 느낌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닐까.
감잎에 글씨를 쓴다는 그 행위는 어떤 목적이 있음이라기 이전에
휙 스쳐 지나며 심금을 울리는 그 무언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정서를 안겨준다.
그에 순간순간의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한 조바심 앞에
쉽게 나타나는 행운처럼 귀히 여길 수 있는 존재라니 어찌 귀하지 않을까.
이에 우리 선조님들 역시 그 좋음을 중국의 이야기에서 배웠고
나 또한 오늘날에 그 이야기에 감흥이 일어 따라쟁이가 되고 있다.
늘 메모를 지나치는 나 역시 순간의 생각을 잊어버리고
그 멋진 말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 이렇게 감잎을 만져보고 직접 글씨를 써보며 잎맥의 확연함도 함께 보았다.
감나무 잎은 세세한 잎맥을 키우며 자신을 종이처럼 사용하도록 스스로 연마했을 것이다.
좋아 보이고 빛나 보이고 누구라도 닮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은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으로 차츰 덕을 쌓아가는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따라쟁이가 되어
여리면서도 당당한 감나무 잎이 전해 준 멋진 감상을 이렇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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