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각인된 신경숙 작가의 인상은 말이 없고 조용한 성품이었다. 그러기에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의 내용들에 유머가 깃들어 있다는 서평에 다소 의아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의아심은 나로 하여금 꼭 책을 읽도록 내 마음을 고무래질 하고 있었다. 달과 친구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내게는 퍽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벽 산행을 지속해온지가 14년 째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숲 속의 생물들임은 말 할 나위가 없지만 드물게, 뒤늦게 존재를 인식하며 친근함을 나눈 존재는 달이었다.
새벽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달은 보름달부터이다. 전날 초저녁 동쪽 하늘에 둥실 떠오른 달은 새벽녘이 되면 막 서쪽으로 넘어가려하는 모습이기에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나서곤 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일까. 팽팽히 부푼 보름달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담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 나는 짐짓 마음 선한사람처럼 내 마음을 양보하며 조금이라도 비워둔 장소가 있으면 내 소원을 들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지나며 조금씩 몸피를 줄여 나가는 달을 보며, 혼자 생각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내려놓기 때문에 몸도 홀쭉해 지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얼마만큼 줄어든 몸을 럭비공에 비유하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럭비공처럼 몸을 만든 달 따라 나 또한 럭비선수가 되기도 하였다.
소나무위에도 자귀나무위에도 내가 다가갈수록 더 높은 나무로 오르는 달과 시합을 하며 오름을 어려워하지 않으며 재미나게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새벽녘 동쪽하늘에 날렵하게 떠 있는 그믐달을 바라보며 시인들이 왜 그렇게 그믐달을 칭송하는지를 생각하며 덩달아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움직임이 없는 숲속 생물들과 달리 움직임이 있는 달은 그 때 그때 내 마음에 따라 이야기를 건네기도, 또 달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내심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으스대기도 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내 일상에서, 아주 사소함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도 있고, 차마 말 할 수 없는 비밀스런 이야기들도 있다.
이런 나의 일련의 행동들이 있었기에 신경숙 작가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슨 이야기 일까가 무척 궁금하였다. 은연중 나와 일체감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해 보았다.
달이 몸맵시를 달리 할 때 마다 들려주는 26편의 이야기에 나만의 상상력이 이어지니 책 읽기가 수월했다. 작가의 조용한 성미를 숨기지 못하고 웃음마저도 조용히 생각하며 웃게 하는 모습에 덩달아 편한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였다.
길거리의 고양이들에 보내는 따스한 시선이 그러하고, 무거운 짐을 이고 든 한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이 업은 여자의 눈길과, 그 노인의 입장에 동질감을 보여주는 또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뭉클함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담을 넘는 도둑의 모습조차 사진을 찍어 두고 싶은 심정, 무엇보다도 초승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중의 하느님의 구두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화가 고흐의 삶의 모습에서 그의 신조를 깨닫게 되어 부디 꿈을 잃지 말기를 바라는 누구나 지니는 평범한 이야기면서도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초승달은 낮에 뜨는 달이어서 만나기 어려운 달인데, 만난다 해도 희미하게 보일 것인데 깊게 각인된 이야기여서 더욱 뚜렷하게 남아 있나 보다.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 정신에 크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언제든 어느 이야기든 편하게 들춰내 읽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네가 미래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네가 고통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한 것들은 저절로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고 쓸모 있는 것이 될 거야. 그걸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미래에 네가 그리는 그림이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게, 쓸모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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