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없는 나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깊은 지리산 고지대에 사는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4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긴 세월을 지켜온 천년송은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등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래서인지 유연함과 함께 강인함도 느껴진다.
나란한 두 그루의 소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며 부부애를 나누고 있다
할아버지소나무
할머니소나무
주방의 작은 창밖으로 들어오는 뒷산의 풍경은 늘 그리움을 안겨주곤 한다. 조금 전 다녀온 산길이지만 그새 또 아련함을 안겨주는 까닭은 조금 전 그 곁을 지나왔다는 마음을 건넬 수 있는 나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그 자리에서 내 마음의 거리를 알려주는 나무들이다. 눈 따로, 마음 따로, 손 따로, 놀리며 설거지를 하는데 거실에 켜 있던 tv에서 ‘지리산 천년송’ 하는 멘트가 들린다. 고무장갑을 긴 채 tv 앞으로 종종거리며 후다닥 갔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구름도 쉬어간다는 와운 마을에서 당산제가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수령 500년이 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두 그루에게 마을의 풍년과 지리산의 안녕을 기하는 제였다. 나무 앞에 놓인 커다란 상 위에는 온갖 제물들이 놓여 있었다. 하얀 도포에 갓을 쓴 어르신들이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뒤에 서 있는 마을 주민들은 두 손을 모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문득 인간의 여린 마음이 보이는 듯싶어 울컥해진다.
오랜 시간을 지내온 나무에 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리움의 실체일거라는 마음이 스쳐간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나무들에게서 그리움을 찾아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닌지... 한 자리에서 살아가며 모든 것을 인내하는 그 무엇에 염원을 기리는 일은 인간의 연약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날, 지역신문에 고로쇠축제와 함께 지리산 반선계곡에서 와운마을 천년송까지 걷기대회를 한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내 마음이 확 당기는 까닭은 고로쇠 축제가 아닌 천년송 이었다. 깊은 산골짜기, 구름이 누워있는 곳의 소나무 풍경이 그려지며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인다.
두 시간을 달려 행사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꽉 들어찬 주차장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차를 위쪽으로 쭉쭉 빼다보니 어느새 와운마을에 들어선다는 길목까지 와 있었다. 다행이 그곳까지는 차들이 들어차지 않았기에 얼른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선다. 훅 끼쳐오는 공기가 여간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좋았다. 부러 되돌아 행사장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않고 내쳐 걸었다. 어차피 나의 목표는 천년송이었지 고로쇠 축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였다. 맑디나 맑은 물빛이 그만 내 마음을 사르르 녹이며 스쳐 지나간다. 청정무구한 자연! 그대로였다. 햇살도 봄 구경을 나왔는지 유난히 따뜻하니 아련함을 안겨준다. 계곡가의 버들개지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얼마만인 줄 모르겠다.
봄기운 가득한 길~ 길속에는 아련함과 함께 지금은 잊힌 옛 이야기들이 우르르 나에게 달려들며 잠든 추억을 깨우쳐 준다. 잡히지 않는 아득하고 허허로움 가득하지만 그 당시는 아무것도 걱정 없이 이 햇살과 뒹굴었던 것 같다. 오늘은 마음 가득 근심이 들어 있었으니.. 다행히 그 근심을 뚫고 들어오는 이 아늑함이라니....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때 나는 꽉 찬 내면이지 않았을까. 살아갈수록 그 꽉 참이 비워져 나간 것 아닌지.. 갈수록 헛헛해지는 마음 길...
계곡 따라 혹은 오솔길 따라 걷노라니 어릴 적 추억이 봄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등에 따사한 봄을 받으며 나물을 캤던 그곳이 이 어디쯤에 있을 것만 같다.
저 멀리 천년송의 자태가 보인다. 아! 멋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나무의 모습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높고 깊은 지리산의 무채색의 계절, 그 속에 홀로 청정함은 과연 인간들에 위엄을 보여주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 역시도 나약한 인간이지 않은가 나만의 소원을 살짝 걸어주며 친근한 척 의지해 본다. 우월한 그 무엇에, 허구에 불과한 그 무엇들을 사람들은 종종 현실에서 만나고 싶어 하고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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