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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김장을 담그며 삶의 연륜을 배우다.

물소리~~^ 2012. 12. 2. 19:36

 

 

 

 

 

 

 

   일요일 이른 아침 김치 통을 들고 큰집으로 가는 길, 이럴 때는 딸이 없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와 함께 동행 한다. 김장철에 김장김치 가지러 올 딸이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내 손에 들려있는 김치 통이 얼른 내 말에 아첨하듯 말을 받는다. 결혼 후 몇 년을 빼고는 거의 집밖으로 나도는 생활을 해 온 나로서는 나 혼자 김장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다 해 놓은 김치를 가져다 먹는 것에 익숙해 있으니 어쩌면 빵점짜리 주부 일지도 모르겠다. 

 

나 때문에 일요일을 택했다는 큰집 형님의 호출을 받고 아주 간편한 옷차림으로 김치통과 앞치마, 고무장갑을 챙겨들고 김장을 하러가고 있다. 큰집에 들어서니 베란다에 간 절여 씻어 놓은 배추가 수북하다. 거실에 커다란 돗자리위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온갖 재료들을 나열해 놓으셨으니 괜한 마음이 풍성해 진다. 넉넉하신 형님은 우선 커피 한 잔을 건네시면서 오늘 우리 한 번 잘해보자고 하신다. 무릎이 조금 불편하신데도 이것저것 꼼꼼하게 준비해 놓으셨다. 조금 후에 오신 손위 시누이님과 셋이서 60포기의 김장을 시작했다. 김치 속을 버무리는 일부터 해야 되는데 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 그건 두 분 형님들의 손맛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굵직한 대파를 ‘어슷어슷’ 하게 썰어 넣으라고 하신다. 그건 쉬운 일이다. 난 무 채썰기와 파 어슷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슷썰기 하는 행위를 즐겨한다고 할까? 내 팔목의 힘이 떨어지는 칼날 아래로 만들어지는 대파의 타원형 모습은 날렵하다. 파 줄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작아지는 타원형이 나란히 놓이는 모습에서 정갈함이 보인다. 언제인가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을 읽을 때 신경숙의 오빠와 갓 결혼한 올케가 시어머니께서 국에 파를 어슷어슷 썰어 넣으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몰라 하며 난감해 하는 올케의 모습을 표현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난 그 때 이렇게 예쁜 말을 왜 몰랐을까 하며 그 올케의 행동에 퍽 관심을 가지고 읽었었다.

 

대파를 다 썰고 나니 이번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무 15개를 배추 사이사이에 넣어야 하신다면서 ‘도톰’ 하게 썰으라고 하신다. 어느 정도의 두께냐고 되물으니 형님은 엄지와 검지를 오므려 두께를 보여 주시니 약 6mm가 될까하여 무를 세 토막으로 자르고 그 하나를 세로로 세워 대 여섯 개로 나누어 보여 드리니 조금 얇다고 하신다. ‘도톰’ 이라는 두께는 엄지와 검지로 만들어지면서 눈으로 재어야 나오는 두께이다. 한 번 보여주신 그 두께를 내 마음에 담아두고 열심히 썰었지만 내 손 끝의 솜씨로는 자꾸만 얇아지고 있었다.

 

무 썰기를 마치니 이제는 쪽파, 갓, 미나리를 ‘적당히 송송’ 썰어 넣으라고 하신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그저 되는대로 알맞게 썰었을 테지만 아무래도 시어른들이신지라 조심스러워 잘하고 싶은 마음에 행동이 굼뜨니 형님은 다시 손가락 마디를 가리키며 4cm 정도의 길이로 썰어라 하신다. 웃음이 쿡! 나온다. 길이를 맞추느라 가닥 추스르기를 반복하니 형님은 또 ‘팡팡’ 썰으라고 하시니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 웃음에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적당히 송송 팡팡’ 은 웃음으로 맞추어야 하는 4cm의 길이였다.

 

고춧가루를 개어 놓은 곳에 액젓을 부으라고 하신다. 통을 들고 얼마만큼 부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그만 할 때 까지’ 부으라고 하신다. 통의 구멍으로 쏟아지는 액젓도 멈출 자세를 대비하고 있음인지 쿨럭쿨럭 통통거리며 나오고 있다. 액젓도 자신이 얼마만큼 쏟아져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고춧가루가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어른들의 ‘그만’ 할 때까지 제 몸을 부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 고유의 음식 김장은 가로 세로 반듯하게 재어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풍경 속에 켜켜이 쌓아온 시간들을 만날 수 있을 때 그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듯이 몇 십 년을 고수해온 솜씨에는 재지 않아도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반듯한 눈짐작이 배어 있음이다. 가족들이 1년을 먹어야 하는 김치가 맛이 없으면 참 난감하겠지만 연륜이 쌓인 손끝에서 나온 맛이 참 감칠맛이 나도록 잘 버무려 졌다. 묽지도 않고 그렇다고 되지도 않은 알맞은 농도로 버무려진 속을 배추 잎 하나씩 들춰가며 발라주는 일이 참 고분고분하게 느껴진다.

 

연륜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고단함이 묵혀 삭혀져서 묻어나올 때 잴 수 없는 깊이의 맛을 가지고 있음이다. 오랜 손길에 익숙해진 질량감은 부족함이 많은 것에서 최상의 맛을 이끌어 내고자 했던 고단함이 예술의 극치로 승화되듯 빚어진 솜씨일 것이다. 여자 셋이 앉아 하는 김장은 어쩌면 모성의 극치가 아닐까. 비록 이제는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여 제 삶들을 살고 있지만 살림을 꾸려가는 여자는 모두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가진 모성은 삶의 모든 고단함을 삭히고 익히면서 또 다른 삶을 껴안기도 해야 했던 길이를 알 수 없는 삶의 연륜이다. 그 그늘진 연륜이 이렇게 손끝으로 묻어 나오고 있으니 참으로 위대한 또 다른 삶에 대한 애착의 행위이지만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는다. 형님들의 손길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내 삶의 연륜은 얼마만한 깊이를 가지고 있을까를 가늠해 본다.

 

버무려 놓은 김치를 담는 통가에 고춧가루를 묻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바라보시던 형님이 말씀하신다. 김장할 때는 그렇게 얌전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여기저기 쓱쓱 묻혀가면서 하라고 하시면서 웃으신다. 몸 고단하게 움직여야만 이루어지는 김장에도 삶의 지혜는 가득하다. 김치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 통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오늘은 비마저 내리면서 전해주는 정적이 나를 흡족하게 해준다. 나는 이렇게 흡족한 마음으로 마지막 가을을 보내고 있다.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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