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의 꽃창살문 (보물 291호)
“내소사 가는 길의 단풍이 너무 고와 울고 싶더라.”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건너오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속절없는 그리움만 안은 채 올 해도 그냥 지나치려나 보다고 체념을 하기 시작할 무렵 뜻밖의 기회가 왔다. 지지난 일요일 의궤전시실을 나와 곧바로 내소사로 길을 잡았다. 어차피 무너진 일요일 일상이었다. 갑작스레 떠나는 길은 언제나 두근거림이 앞장서곤 한다. 어디쯤 달리는데 비가 듣기 시작한다. 가을비와 단풍은 분위기로서의 찰떡궁합이 아니던가. 은근한 마음으로 즐기며 1시간 30분여를 달려 도착한 내소사 입구는 이미 많은 인파가 전나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쭉쭉 뻗은 전나무 길의 사람들은 모두 환한 표정이었다. 그 틈에 끼어드니 많은 인파에도 의연함으로 서 있는 나무의 향기가 아련한 추억처럼 심신에 배어든다. 이 전나무 숲도 지난 태풍에 몸살을 앓은 듯싶다. 뿌리 채 뽑혀 누운 것도 있고, 훌쩍 키가 큰 나무들은 우듬지를 꺾인 채 멋을 포기하며 서 있기도 했다. 울창했던 숲길의 하늘이 헤싱헤싱하니 조금은 어설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스님들의 구도심을 배운 듯 의연한 모습일 뿐, 사람들의 들뜸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전나무길이 끝날 무렵 단풍든 나무들의 도열을 받았다. 사이사이 감나무들의 풍성한 열매들은 얼마나 탐스러운가. 푸른 듯 노란 빛을 머금기 시작한 은행나무는 제 흥에 겨운 듯 무수한 잎을 날리고 있다. 군데군데의 벚나무들은 봄의 화사함을 자랑하듯 잎마저 고운 빛이다. 생을 다하는 시간에 뿜어내는 빛이 저토록 고울 수 있다면… 과연 친구의 눈물을 삼킬 만큼 고운 빛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지르는 제 각각의 감탄사들도 이 풍경속의 한 모습일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사천왕문을 지나니 1,000살 먹은 느티나무가 내소사의 이력을 알려주며 몸가짐을 조심하라 이른다. 한 마당처럼 여겨지는 경내지만 모든 것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조금씩 오르며 속세의 번뇌를 모두 떨치라 일러주는 오름이다. 서 너 계단 위의 절 마당을 만난다. 다시 몇 계단의 돌계단을 올라 대웅보전을 맞닥뜨린다. 그 순간, 전해오는 고색창연함의 건물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의 실체를 보았다.
쇠못 하나 쓰지 않고 3년 동안 만든 나무토막으로 지었단다. 호랑이가 새로 변하여 날아다니며 단청을 했단다. 대웅보전의 건축에 얽힌 설화에는 인간 이상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힘이 담겨 있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머언 그리움의 실체는, 이루고 싶은 나의 소망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웅전 천정의 단청은 퇴색하여 빛을 발하지 못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부정 탄 나무토막을 쓸 수 없어 끼우지 못한 곳은 어디인가. 새가 미처 칠하지 못했다는 그 한 조각은 어디에 있을까. 속세에 길들여진 내 눈으로는 찾을 수 없다.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곳에서 차마 고개를 들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찾아 볼 수 없어 예를 갖춘 후, 도망치듯 대웅전을 나왔다. 서둘러 신발을 찾아 신고 돌아서는 나를 은근한 미소로 맞이한 그 무엇! 내소사의 백미라 일컫는 꽃창살 문 이었다. 많은 인파로 붐볐지만 꽃창살 문만큼은 문득 고요했다. 살짝 손을 올려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이 꽃창살 문을 유홍준 교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극치’ 라 했다. 나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학적 감각은 전무하다. 다만 나무 그대로의 빛깔과 손으로 전해지는 안온한 감촉만으로도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할 뿐이다. 곱게 색칠한 꽃창살 이었다고 한다. 세월과 함께 스러져갔던 빛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지닌 뜻을 그윽한 예스러운 빛으로 발하며 보는 이들에게 신비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꽃창살 문은 대웅전의 문지기였다. 무언가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리 제 몸의 고운 꽃 마음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받아 든 환한 꽃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엎드린 사람들은 얼마나 안도의 마음을 지니고 갔을까.
천년여의 세월동안 꽃창살 문은 꽃 마음을 다 내어준 후, 빛을 잃었다. 이제 제 몸 전체를 사람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당신들이 원하는, 바라는 그 마음 빛으로 자신을 칠하라고 하는 듯, 침묵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붙잡는다. 그 꽃 하나 부여잡으며 내 마음 빛을 칠해 본다.
아, 꽃창살 문은 뭇 사람들의 염원 빛을 받아 모아 가을 나무들에게 보냈나 보다. 그리하여 저 나무들은 저토록 제각각 서로 다른 빛을 토해내고 있음이다. 염원을 바라는 순수함은 저리도 예쁘게 보이는 것일까. 순수하지 않은 염원은 무슨 빛일까.
꽃창살 문은 사람들의 형상 없는 염원을 나무를 통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 내 마음 빛도 저렇게 표현 될 수 있을까. 부족함이 많기만 한 나는 뒤꼭지가 자꾸만 당긴다. 단풍의 고운 빛들은 소멸하고자 뿜어내는 빛이 아니었다. 새로운 희망을 내딛고 싶은 마음 빛이었다. 꽃창살 문이 나무로 보낸 빛의 형태만 바라보는 내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빛 속에 깃든 마음의 자태까지 볼 수 있는 안목으로 단풍이 아름답다 말하는 내가 되기를 염원한다.
되돌아 내소사를 내려오는 길, 내 마음 빛 담은 나무들이 다시 없이 아름답다. 이 땅의 모든 자연은 스스로 부처가 되어 나를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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