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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의궤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

물소리~~^ 2012. 11. 13. 13:28

 

 

 

 

 

 

 

 

 

 

   박물관 가을의 아침은 고요하다. 정갈하게 자리한 나무들은 지난여름의 초록을 조금치의 서운함도 지니지 않은 채 물씬물씬 덜어낸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규칙에 따라 흐트러짐 없는 모범생처럼 계절에 순응하며 제 몸 색을 변화시키고 있다. 나무들은 제 몸을 변화시키는 때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을 아우르는 자연은, 비밀스런 장소에 그 법칙을 정성들여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생과 사의 변환 속에서 새로이 탄생되는 것들에 규범을 전해주기 위한 노력은 선각자의 지혜와 철학에서 비롯됨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21세기를 지나는 이곳 박물관에서는 18세기의 기록들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기념한 '조선 왕실의 위엄, 외규장각 의궤' 라는 타이틀 아래의 특별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만난 의궤에 나는 그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정갈한 글씨에 반하고 말았다. 어쩜 그리도 한 획 흐트러짐 없는 정숙함을 보여 주고 있는지… 마치 틀에 넣어 찍어낸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책의 부피에 놀랐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아도 그 육중한 부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300여 년이 흐른 시간 이지만 그 어느 면 하나 지금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탁월함에 눈과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행하는 일들에 대해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했다. 이것을 '의궤'라고 하였다.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란 말로 '의식을 치르는 데 규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라 한다. 의궤에는 모든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 문서, 참가자의 이름, 사용된 물품, 비용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는 또한 후일에 일을 도모하는데 지침서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였다. 

 

의궤 기록의 정점은 정조 시대의 규장각에서 이루어진다. 정조는 1782년에 강화도에 또 다른 규장각인 외규장각을 설치해 창덕궁에 있던 왕실 관련 자료를 옮겨 보관하도록 했다. 바다에 싸인 섬 강화도는 분실이나 도난에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조 死후, 66년이 지난 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하였다. 조선에서 천도교 탄압을 하는 과정에 프랑스 신부가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퇴각한다. 그 와중에 강화도의 외규장각 건물이 불에 탔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 297권을 골라 가져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하였다. 한자로 기록된 탓일까. 가져간 의궤를 중국 도서로 분류해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다. 그 기억을 고스란히 찾아 주신 분은 여성이셨다.

 

박병선 박사는 우리나라 유학비자1호로 프랑스에 유학을 가신 분이다. 나약한 여성이셨지만 유난히 우리 역사를 사랑한 분이셨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1975년에 우리의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셨다 한다. 그 후 우리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노력을 하셨다. 이를 기화로 정부와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으로 2011년에 총 297권이 4차례에 걸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누구 하나 찾아주지 않는 먼 이국에서 의궤들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그곳에서 고국 사람을 만나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좋아 했을까.

 

박사께서는 2011년 11월 22일에 향년 83세에 타계하셨다. 국가에서는 그분의 공로를 인정하여 국립묘지에 모셨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실에서 나오니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많이 가라 앉아 있었다. 하늘도 역사적 사실에 가슴 쓸어내리는 표정이리라. 박물관 뜰의 잔디밭에는 형형색색의 고운 낙엽들이 가득하였다. 참 예쁘다. 저 나무들도 어쩌면 누군가가 정성으로 기록 보관한 자연의궤에 따라 의식을 행하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사분란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궤 페이지마다에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기득하다. 세세한 기록과 기술들을 보노라면 자랑스러움이 가득해진다. 한편 저런 수많은 행사들을 화려하게 지내는 동안 백성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도 또한 함께 버무려 진다. 오직 왕실 하나를 위해 존재했던 민초들의 마음 역시 저 화려함 속에 보이지 않게 내재 되어 있음이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지난 흔적들에서 우수함을 배우고 잘못됨을 찾을 수 있게 함이 의궤전시의 목적이라면 지나친 사사로운 감정일까. 나 자신을 슬쩍 끼워보고 싶다.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어려움을 만날 때면 마음 한 구석에 엉뚱한 소망이 용트림하곤 한다. 그 어떤 살아가는 정도(正道)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결정하기 어렵기에 미궁을 헤쳐 나가는 길을 걸을 지언 정, 그나마 정해진 길이 있다면 좀 수월한 길이 아닐까하는 바램으로 어려움을 비켜나곤 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축적된 일들은 잘한 것보다 못한 것들이 더 많다. 아이들이 커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 할 일도 자연스레 변화가 있다. 그 변화에 중심점이 되어 이끌어 가는 힘이 나에겐 부족하다.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잘 한 일들도 못한 일들에 가려지고 만다. 

 

나만의 규칙적인 생활이면에는 가족들의 불편함이 따를 수 있음이다. 이른 아침 규칙적으로 산을 오르는 시간을 할애하여 반찬 하나라도 정성스레 준비할 수 있음을 나는 간과한다. 하루 꽉 찬 시간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이 적다고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내가 잘 못하는 일들이다. 그랬다. 이런 때를 대비해 묻혀버린 내 잘 한 일들을 기록해 놓았어야 했다. 내가 기록해 놓은 것들을 보고 잘했고 잘못함의 판단은 나 이외의 식구들이다.

 

의궤를 보며 자랑스러움과 민초들의 생활을 함께 떠올렸듯, 나의 기록은 식구들에게만큼은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다. 글을 읽을 수 없는 나무들도 철저히 따라 할 수 있는 규칙을 우리라고 못 하겠는가. 의궤를 바라보며 책임질 수 있는 기록의 참뜻을 배울 수 있음에, 진정 뿌듯하고 자랑스럽기 한량없는 마음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