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차분히 내리는 가을 아침이다. 계절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이 비 그치면 지난 토요일에 다녀온 금오산의 단풍 빛도 더 고와질 것이다. 작은 아이와 함께 가을 산을 오르는 마음이 조금은 어색했었다. 아마도 아이가 먼저 계획한 산행이었기 때문이리라. 늘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는 아이들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인지 받는다는 것, 아이의 의견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 자체에 내심 쑥스러워진다.
산 초입은 이제 막 가을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힘 잃은 초록 잎들이 서서히 빛깔을 바꾸며 풍경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단풍나무보다는 키 낮은 잡목들의 잎 위에 내려앉은 빛들이 참 곱다. 잡목들이 있어야 산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주는 고움이다. 우리 사회도 잘나고 잘사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함께 하기에 더 살맛나는 세상이 아니던가. 내 마음을 씻어주는 고운 풍경들에 쑥스러움도 씻겼는지 어느새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산길이었다.
등산길은 의외로 가팔랐다. 계속 박차고 오르는 돌계단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든 철제계단 이었다. 힘겹게 오르다 중간 중간 쉬며 멀리 바라보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왜 나무는 단풍이 들고 빛이 변할까를 비단 자연의 섭리라고만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단풍든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고, 곁에 함께 살아가는 여러 생물들이 있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이다. 듬성듬성 듬직한 모습의 바위들 또한 묘한 정취를 자아내며 산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요소다.
웅장하면서도 커다란 암석들은 산에 불청객인 듯싶지만 지극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산이 지닌 최고의 여백이라 여겨졌다. 그 여백은 이 산을 의지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듯싶다. 거대한 암석들에게는 이 산의 모든 것들을 지켜주고 있는 듯싶은 기상이 서려있다. 또한 바람과 비에 서서히 깎아 내리며 형성되는 기묘한 모습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갖가지 추측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큰 바위얼굴이 떠오른다. 그 당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큰 바위가 나를 덮치듯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결국은 자신의 얼굴이었다는 교훈적인 결론에의 감동은 지금까지도 선연하다. 그래서일까 큰 산의 우람한 바위들을 만나면 멀리서 실눈을 하고 바라본다. 바위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를 꼭 찾아내고픈 마음에서다.
한참을 걷다 만난 이정표에는 정상으로 곧바로 가는 길과 마애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표지가 있었다. 나는 당연 마애불이 있는 쪽으로 택했고 아이는 나를 따라 나선다. 그 길은 우리 뒷산과 같은 오솔길이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을 뿐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어서인지 가파름이 아닌 평지를 걷는 편안함이었다. 내 두 다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 편안해진다. 아,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이 이토록 편안하다니… 하지만 꼭꼭 숨은 듯 빨리 만나고 싶은 성마름을 모른 척 한다.
길을 잘 모르는 초행이라서 앞서가는 일행 두 명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어디쯤에 털별꽃아재비 꽃들이 무리지어 피었음에 얼른 카메라에 담느라 길을 벗어나니 앞서는 일행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꼭 보고 가셔요’ 한다. 아마도 한 눈 파는 나를 보고 마애불을 그냥 지나쳐 가는 줄 알았나 보다.
아, 깜짝 놀랐다. 어느 마애불과 다른 모습으로 서있었다. 고려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측하며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이다. 보통 큰 바위에 새겨 그리는 형식이었는데 이곳 마애불은 큰 바위의 모서리 부분을 깎아 내어 새긴 모습이었다. 얼른 보아 입체감이 느껴졌으며 그 뒤의 우람한 바위들에 호위를 받고 있었다.
얼마나 긴 세월동안 이렇게 서 있었던가. 이 마애불을 새긴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랜 세월동안 표정마저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서 있음을 바라보노라니 이 마애불 자체가 정진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바위에 새긴 마애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 낮아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새겨 놓은 사람의 마음을 안고 변함없이 서있는 모습에 위축되기 때문이리라.
이러저러 상상을 하는 나이지만 마애불도 말이 없고 바위들도 말이 없다. 다만 느낌만을 전해 줄 뿐이다. 우뚝 솟아 있을 뿐, 말하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한자리에 서서, 보고 들은 사연들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차라리 침묵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나 혼자 바라보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도 무어라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라고…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라는 시구가 절절히 차오른다. 가을 햇살 가득 안고 있는 가을 산의 바위들은 그저 그러할 따름인 채 묵언이었지만 나는 더 없이 좋은 하루였다. 침묵의 불확실함이 느낌의 확실함으로 남은 멋진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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