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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침묵으로 꽃을 사다.

물소리~~^ 2012. 9. 23. 21:47

 

 

 

 

 

 

 

 

 

 

 

   베란다에 빨래를 널며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니 잠자리 떼가 무리지어 날고 있음이 보인다. 어머나, 정말 가을이네~ 혼자 탄성을 지르며 바라보았다. 더 높이 오르지도 않고 더 낮게 내려가지도 않는 그만 그만한 몸짓으로 여럿이 무리지어 뱅뱅거리며 날고 있는 그 모습에 그만 내 마음이 촉촉해진다. 잠자리가 날고 있는 허공과 맞닿은 산의 초입 오솔길이 가을을 조금씩 들여놓은 모습으로 다소곳이 앉아있다. 내 남은 일들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산을 오른다. 아! 향긋한 산내음! 갖가지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가을향기를 내 뿜으며 나를 유혹한다. 

 

산 입구에는 지난 여름동안 자란 풀들이 제초작업으로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제 몸을 말려가며 마지막 계절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무 그늘이 비켜선 자리에서 강아지풀이 통통 여물어 가며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이 계절은 곱기만 하다. 고요한 숲길에 잔잔히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화려함을 자랑하고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강함을 보인다면 가을에 피는 꽃들은 참으로 수수하고 여린 모습이다.

 

세 번째 오르막길 왼쪽길섶은 아무렇게 피어난 꽃들로 작은 꽃동산이 수더분하게 만들어져 있다. 노란 도깨비바늘꽃과 맑은 청색의 닭의장풀꽃 그리고 이삭여뀌, 며느리배꼽, 쥐꼬리망초 등의 아주 잔잔한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들은 햇살마저 숨죽이는 고요함 속에 서로를 침묵으로 응시하며 살포시 고개를 쳐들고 싱싱함을 품어낸다. 얼마나 싱그러운가. 서로 침묵으로 이야기하고 침묵으로 들으니 저리도 잔잔한 모습을 보이나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귀를 가까이 가져가려는데 갑자기 푸드덕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에 나뭇가지가 제 풀에 놀란 듯 흔들리는 몸짓을 침묵으로 보여준다. 내 몸도 움찔거린다.

 

몸을 세워 고개를 드니 저쪽 산등성이의 푸르름이 반짝이며 확 밀려온다. 그 푸르름에 닿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자 금세 땀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 등줄기를 적신다. 몸이 땀에 젖어가는 만큼 기분은 상쾌해 진다. 내가 살아오며 내가 선택해야했던 일들에 대한 중압감도 이 땀을 타고 빠져 나가려나? 조금씩 변색되어가는 잡초들 틈에서 몇 송이의 하얀 꽃들이 보인다.

 

아! 개망초.~~ 어쩜 이제는 시들어 버릴 시기인데 늦둥이인가? 그래서 더 예뻐 보이는 것인가? 몇 송이의 작고 하얀 개망초꽃, 그 말없는 움직임은 살아 움직이는 고요를 보여준다. 그 앞에 앉아 살짝 건드려보니 금세 쓰러질 것 같더니만 몇 번 몸을 흔들다 가만히 제자리에 멈춘다. 저 고요함을 닮고 싶구나. 이 움직이는 고요함마저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저 만큼 달아난 산등성 위의 바람이 그만 일어나라며 옷자락을 당긴다.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이 숲속은 온통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서로의 이야기들을 침묵으로 건네고 침묵으로 듣는 마음들로 가득하다. 너무 투명한 하늘빛 때문에 내 속 마음을 들킬까봐 말을 아끼고 싶은 나의 침묵마저 그들은 다 듣고 있기에 나 또한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버린다. 나는 이런 가을바람을 좋아하고 가을빛을 좋아한다. 그들이 던져주는 침묵의 여운을 침묵으로 받아들으며 나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니 문득 ‘침묵과 듣다’는 같은 말임을 생각한다.

 

영어로 침묵은 silent, 듣다는 listen 이다. 비록 품사는 다르지만 두 낱말은 알파벳 순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침묵으로 듣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은 일치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연주회에서 한 곡의 연주가 끝났어도 지휘자의 손이 내려오지 않으면 박수를 칠 수 없다. 곡은 끝났지만 그 곡이 남겨주는 여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는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연주곡의 여운에 함께 호흡하며 곡이 던져주는 침묵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연주자와 관객이 일치되며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침묵으로 들으며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기 때문이리라. 한용운님의 시 한 구절에 ‘웅변은 은이요, 침묵이 금이라면 그 금으로 자유의 꽃 모두 사리라“ 는 말이 있다. 오늘 나는 주고받은 나의 침묵으로 내 산의 꽃들을 모두 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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