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의 前景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한다.
무엇을 만날 것인가?
무엇이 나를 기다릴 것인가를 생각하며 나를 잊기 위한 시간이었다.
아름다움을 만나 그처럼 내가 아름다워짐을 스스로 느끼기 위해서다.
내게 유익함을 안겨줌으로 훌륭했던 조상들의 흔적을 보는 시간 속에서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임이 자랑스러움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동심으로 돌아기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 도산서원을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고즈넉하였다. 빗줄기도 가늘어져 있어 비옷을 오히려 뽐낼 수 있는 정도였다. 도착한 주차장에서 도산서원 정문까지의 길은 잠시 걸어야 하는 길, 정갈하게 다듬어진 길은 비에 다시 씻긴 정갈함으로 나의 마음을 한없는 정겨움으로 끌어간다. 일찍 움직여 얻은 시간의 사람 없는 풍경이 참으로 좋기만 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선생의 고향이다.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은 곳이다. 이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검소하게 지어진 서원으로,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전체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퇴계선생 사후, 후학들이 확장해 지은 도산서원은, 선생이 직접 짓고 몸소 제자들을 가르친 곳인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건축물들이 아우러져 있는 참으로 아담한 서원이다.
서원 곳곳에 매화가 유난히 많은 까닭은 선생은 평생 매화를 끔찍이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선생은 시 속에서도 매화를 매군(梅君) 또는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인격체로 예우하였다. 늦게 핀 매화를 보고는 자신이 늙고 병들어 추위를 무서워하기에 자기를 위해 일부러 늦게 피어준 것이라고 했다. 애지중지하던 매화가 얼어 죽자 매화의 혼(寃魂)을 애도하는 장시를 짓기까지 했다. 매화가 곧 퇴계였고, 퇴계가 바로 매화였다.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퇴계의 인품에 반한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진귀한 매화를 구해 선생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말은 유명한 말이지 않던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도산서원의 풍모는 멀리서도 위엄을 보이고 있었다. 아! 정말 좋다!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까이 다가가는 나였다.
안동댐으로 호수가 된 안동호의 풍경과 어우러진 참으로 단정한 길이었다.
시사단
안동호 건너편 비각은 시사단이란다. 조선 정조대왕께서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1792년에 관원을 보내 선생을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송림에서 임금의 어제로 과거를 보게 했는데 응시자는 7천명이었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세운 비각인데 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 더 높이 축대를 쌓고 비각으로 자리를 표해 두었다고 한다. 갑자기 내린 탁한 물에도 제 그림자를 보이고 있으니 이는 물보다 더 맑은 정신이 어려 있음인 것 같으니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도산서원 앞마당의 고목들
옆으로 커가는 향나무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지를 키우며 조화를 이룬 왕버들
도산서원 앞마당의 우물
이름이 ‘열정’ 이란다
우물 모양을 글자의 같은 형태로 만들었음이 이채롭다.
도산서원의 문
이제 저 문안으로 들어서면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왠지 자꾸 옷깃이 여며지며 조심스러워지는 내 마음이었다.
문안의 계단
쉿! 나보고 정숙하란다.
조심조심 걸으라한다
계단을 감싸고 있는 작약들과 매화나무의 꽃은 다 졌지만
그 기품만은 여전한 채 고택을 지키고 있으면서 나더러 조신하라 일러준다.
서원의 원조 도산서당을 만나다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니 아! 도산서당이 나를 반긴다.
저 싸리문 좀 보세요.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몸짓 이예요.
얼마나 앙증스러운지요. 문의 역할은 안과 밖의 차단이지만
또한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소통의 기구이기도 하다.
그 소통이 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모습이다.
선생이 기거하셨던 작은 방
선생이 거처하시던 방을 “완락재” 라 정하셨다 한다.
이 작은 공간에서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내면서
퇴계 선생이 남긴 삶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오늘날 우리가 450년 전 지어진 이 조그마한 서당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루를 ‘암서헌’ 이라 지으셨는데.. 마루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풍경은 우리나라 조경기술의 하나이다.
저절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안겨준다.
정우당
정우당이란 연못을 만드시어 꽃 중의 군자라 일컫는 연꽃을 심으셨다.
진흙탕에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맑다라는 정신을 제자들에게 은연 중 가르치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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