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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바람과 리듬의 소리를 읽다.

물소리~~^ 2012. 6. 27. 10:13

 

 

 

 

 

 

 

 

   이른 아침의 바람이 상쾌하다. 더위와 가뭄에 걱정되던 마음에 한순간 비가 오려나? 하는 반가운 마음을 안겨주는 바람이었다. 바람결이 여느 때보다 시원하게 느껴지니 바람의 손이라도 잡아 보고픈 마음이다. 봉우리에 서서 가만히 바람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바람은 급한 발걸음으로 내쳐 들어오지 않았다. 나무의 곁을 조심스레 지나면서 나뭇잎에 물들어 초록바람이 되어 숲의 식구가 되어있었다. 나무들은 바람을 맞이하되 자신에 맞는 역량만큼만 받아들이는 듯싶었다.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키 낮은 나무는 제 키 만큼만 받아들이면서 다음의 나무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바람을 타는 나무들은 제각각의 몸짓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 가뭄에 혼신의 힘을 다해 피워낸 듯 자귀나무의 붉은 꽃이 초록 사이에 유난히 선명하다. 바람은 꽃을 스치지 않았다. 다만 가지를 스치며 지나갔고, 가지는 꽃을 태워 몸 전체를 출렁일 뿐이니 고운 꽃은 멀미조차 하지 않은 듯 고요한 모습이다.

 

순간순간의 바람의 이름을 불러본다. 솔바람, 꽃바람, 실바람, 산바람… 바람의 이름이 참 많다. 바람은 하나의 형태이었지만 맞이하는 사물에 따라 스스로 모습을 바꾸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바람의 각기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 바람이 사물을 만나 소통으로 빚어지는 몸짓 언어의 뜻을 내가 읽었기 때문이리라. 이 순간만큼 나와 바람과 사물은 서로 소통하고 있었음이다.

 

뜻을 지닌 언어는 소통의 힘이 있다. 소통의 최고의 수단은 말과 글이지만 이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기에 소통의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 말과 글의 한계성 대신 느낌으로, 몸짓으로 전달 될 수 있는 언어를 흔히 만국의언어라 한다. 이중 음악은 만국의언어를 지칭하기에 으뜸이 되고 있다. 하나의 음악에서 전해지는 울림에 대한 느낌은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이무지치 내한공연을 보면서 음악이 갖는 만국의언어성을 더욱 실감하였다.

 

실내악의 전설 이무지치는 창단 6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월드투어의 마지막 나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으며, 그중 마지막 공연지인 이곳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지난 23일에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다. 이무지치 실내악단은 총 12명으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현악 실내합주단이다. 지휘자 없이 단원 중 안토니오 안셀미 라는 바이올리스터가 수석악장(리더)이라 하였다. 흥미롭게 지켜보는 동안 나는 이 악장의 연주하는 모습을 아주 세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수석악장인 안토니오 안셀미는 이탈리아의 최고의 바이올린연주자라 한다. 멀리서 보아 뚜렷하진 않았지만 장발에 조금 마른 체형의 연주자는 연주하는 내내 구부정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 자세는 격정적인 연주의 자세이었으니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43세로 단원 중에서는 그나마 젊은 나이라 하였다. 그는 리더답게 온 몸을 다 해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음이 고음으로 올라가면 그이는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쭉 힘을 주며 내밀었다. 빠른 템포에서는 머리를 격하게 흔들기도, 조금은 흥겨운 음률이다 싶으면 그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모두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아, 그랬다. 그는 음률에 따라 몸의 리듬을 살렸고 그 리듬은 곧바로 활에서 현을 타고 흘렀다. 현을 타고 흐르는 선율은 뜻을 지닌 언어가 되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음악이란 언어를 통하여 우리에게 함께 느껴보자는 그만의 몸짓(제스처)은 리듬감의 표현으로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수단원의 연주는 각 개인의 연주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흥겨웠다. 같은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현악기의 활의 각도는 제 각각이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가로로 톱질하듯 현을 켜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활은 어깨위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제 각각의 각도를 지니며 움직였다. 서로 다른 기울기였지만 리듬만은 일사불란하였다. 참 아름다웠다.

 

연주자 각자의 몸의 리듬에 따라 세워지는 서로 다른 활의 기울기는 각 연주자의 몸의 리듬이고 그들만의 언어였음에 틀림없었다. 리더의 연주에 가끔 보조연주를 할 때의 조심스러움 역시 몸의 언어를 활로 전해주고 활은 현을 타면서 조심스러움의 자세를 잃지 않음에 정말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서로서로 전해지는 음의 소통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뜻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스스로 그 뜻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았다. 바람의 형태는 없지만 사물을 통해 제 이름을 전하고 있다. 악기는 연주자의 리듬을 타고 전해지는 음으로 소통의 매개체인 언어를 이루고 있었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소통의 역할인 언어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바람과 리듬의 소리를 읽었다.

 

 

 

 

 

소리문화의전당 연주홀 모악당 전경

 

 

 

 

 

기립박수 받고있는 이무지치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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