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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그리스인 조르바

물소리~~^ 2012. 6. 2. 21:37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소설이다. 작가의 이름이 참 어렵다. 혀가 제대로 구르지 않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글 이어서일까? 어딘가는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한 신문에서 기획한 고전읽기에 선정된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기사에 읽고 싶어 산 책 이였다. 뭐든 최고면 혹하는 내 마음도 문제였지만 그에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 책 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45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읽기 초반에는 억지로 페이지를 넘겨가는 책임감으로 읽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300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는 저절로 속도감이 붙어 즐거운 책읽기로 마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여겨본다.

 

조르바라는 이름을 가진 책의 주인공은 실제인물이라 한다. 작가가 생전에 자신의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3사람 중 한 사람이 조르바였고, 소설 말미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을 꼭 남겨야한다는 계시를 느껴 엄청난 속도로 완성한 소설임을 밝힌다.

 

번역자는 책의 말미에 20페이지를 할애하여 작가에 대한 설명을 해 놓았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작가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인 <메토이소노 : 聖化)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뜻은 <거룩하게 되기>다.(p 460) 이에 작가는 조르바를 불러와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심도 있게 헤치며 소설로 완성한 것이다.

 

책 속의 나는 작가 자신의 변신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좋은 글 쓰기를 꿈꾸는 나는 새로움의 길을 걷기위해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 조르바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르바는 나를 두목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책의 첫머리였지만 조르바를 묘사한 글에서 독자인 나는 그가 매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직감했고, 독자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기에 독자인 내가 한편 기특하기도 했다.

 

조르바는 60대였고, 조르바가 두목이라 부르는 나는 30대였다. 나(두목)는 친구가 책벌레라 부를 만큼 책속에 묻혀 살아왔다. 조르바는 이 세상을 살아오며 안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고, 여자 만나기를 좋아하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성은 순수 그 자체였다. 자신의 내면이 시키는 일은 솔직하게 해 내며 느낌 그대로 마음 표현하는 그였다.

 

두목은 점점 그의 행동과 말, 모든 것에 호감을 가지며 좋아하게 된다. 두목은 크레타 섬에서 탄광사업을 시작하고 조르바를 십장으로 고용한다. 조르바는 인부들을 지휘하며 일을 야무지게 처리한다. 행여 두목이 나서서 인부들을 간섭이라도 할라치면, 딱 부러지게 안 된다 한다. 자기가 쌓은 내력이 있어 일사분란하게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조르바였다.

 

같이 일을 하면서 두목은 조르바의 순수함에 점점 더 끌리게 된다. 탄광사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두목이 건네준 돈을 가지고 타지에 나갔지만 조르바는 그 돈을 몽땅 여자에게 투자하고 돌아온다. 그런 그를 돌아와 주어서 반갑다는 마음으로 두목은 맞이한다. 조르바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곳에 있는 부패한 수도원을 공략하여 탕진한 돈을 찾으려 한다. (이런 내용 때문에 작가는 그리스정교에서 파문당하고 또 다른 책은 금서가 되었다고 함)

 

 

두목은 조르바의 말 한마디에도 무게가 있음을 조용히 깨닫곤 한다. 그의 말은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 p 400 -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느낌은 말에서도 글에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는 이 말에 나는 깊은 공감을 느끼기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덮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조르바처럼 생각 그대로 살아가는 삶인가. 아니면 작가를 대신한 두목의 삶처럼 절제하며 사는 것일까. 서로간의 잘못을 저지레한 절(寺)님들의 보기 흉한 모습들… 이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한 행동일까. 이런 일로 행여 부처님이 안 오실까 걱정 되는 초파일에 읽기를 마친 조르바의 삶을 지지할 것인가 아닐까 하는 우문에 먹먹하기도 하지만, 내면에 지닐 수 있는 순수한 감정만은 추구하고픈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내 이웃에게 언제나 따듯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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