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듯싶다.
마음 조금만 돌리면 지천의 가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그만 나의 틀에 갇혀 지낸 듯싶은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시간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지우개라 했던가.
어딘가에 더딘 걸음을 쉬고 있는 가을 끝자락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달력상 가을은 아직 다 지워지지 않고 일주일여 남아 있음이 다행스럽다.
오늘 아침 하늘길은 꾸무럭하다.
회색빛 구름도 차마 하늘은 다 가리기 미안했던지 제 몸만큼만 드리우고 있다.
마치 가을이 펼치는 공연장을 꾸며주는 커튼처럼 안정감이 느껴지며
자꾸 내 눈길을 끌어간다.
하늘 아래
눈 안으로 들어오는 가을 들녘의 텅 빈 논들은
가슴으로 읽어 감성이 되어주는 풍경으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정감이 가득 차 있다.
너른 들녘에 펼쳐진 빈 논들에서 풍요로움이 물씬 풍겨온다.
비어있음에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음은
넉넉하게 내준 충만함에서 빚어지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빈 논에는 하얗게 포장된 둥그런 것들이 듬성듬성,
혹은 촘촘히 제멋대로의 몸짓으로 노닐고 있다. 볏짚 덩어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게 다가오는 풍경이었는데
이제 늦가을 들녘의 풍경으로 자리 잡힌 듯 익숙한 풍경이다.
다감함보다 잘 정돈된 느낌을 안겨주는 저 덩어리들은
추수를 끝낸 볏짚에 발효제를 넣어 곤포라 불리는 하얀 천에 싸 두었다가
소의 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곤포 사일리지(梱包 Silage)다.
우리가 겨울을 대비해 김장김치를 담그듯,
소들의 먹이를 저렇게 갈무리해두고 있으니
‘짚치’라 하면 좋겠지만 거창한 이름이 낯설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저 하얀 덩어리가 되기 전
쌓인 볏짚들 사이를 뛰놀곤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 하얀 덩어리들이 갑자기 피아노 건반으로 보인다.
듬성듬성, 나란나란, 높고 낮게 배열되어 있어 비록 음의 정확성은 떨어지겠지만
덩치 큰 저들이 안으로 발효되는 몸짓에서 전해주는 선율과 리듬은
머언 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계절을 알리는
눈으로 듣는 노래일 것만 같다.
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신비함의 여운을 간직하면서 차츰 변화되는 모습을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가도록 이끌어 가는 이치가 참 아름답다.
가을 들판을 한 해의 장중한 음악의 클라이맥스라 생각했던
나의 옛 생각이 점수를 후하게 받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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