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달 전일까??
10월 12일, 고추장 담기를 오전에 마치고
남편에게 지금 김제 지평선 축제는 끝났지만
그곳에 가는 길의 가을 정취는 좋을 것 같으니 다녀오자 청했다.
부지런히 고추장 담는 모습을 지켜본 남편이기에 얼른 그러자고 한다.
내가 그곳에 가자 한 속내는
조정래 님의 대하 장편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나오는
'징게맹갱외에밋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자그마한 사찰 망해사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징게맹갱외에밋들'이란 말은 '김제 만경 너른 들'을' 일컫는 말로 소설에서는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라고
표현되었다. 얼마나 넓은지 그 지역 어느 곳은 '광활면'이라는 지명도 있다.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다 신시도 갑문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다 왼쪽으로 난 동서도로로 진입했다.
여기는 방조제가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라 일컫는다.
바닷물 위가 아닌,
방조제로 물이 막힌 갯벌 위를 달리는 도로라서 그런가 보다고
혼자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갯벌에는 칠면초가 가득 자라고 있으니 온통 붉은색이다.
칠면초는 염생식물인데 그렇다면 저 땅은 아직도 염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방조제로 매립한 땅의 면적으로 한반도 지도가 바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는데
벌써 몇십 년을 이렇게 방치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냥 쓸쓸해지는 내 마음을 위로하듯
길가에 나란히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다 만난 경사로를 올라 망해사에 도착했다.
망해사의 한자 표기는 ‘望海寺’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 하여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절이었는데
이제 바다를 잃은 忘海寺 라 불러야 할 판이다.
새만금방조제로 막혀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를 잊어야 하는 자그마한 절이 되었지만
만경강과 서해에 인접해 해넘이 경관 명소로는 아직도 유명한 곳이다.
낙서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28호
낙서전은 1589년(선조 22년) 진목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2년인 642년 창건된 1,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작은 사찰로
이곳 낙서전과 팽나무는 명승지정 예고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망해사의 중심건물인 극락전이 지난 4월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 극락전만 소실되고 명승지정 대상인 낙서전과 팽나무는 피해가 없었고
지난 10월에 명승 지정이 확정되었다.
이 작은 사찰의 낙서전이 명승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석가모니 화신으로 추앙받는 호남 최고의 고승 진목대사의
삶과 행적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절집이기 때문이라 한다.
극락전은 여러 차례 증축되면서 1990년대에 지어진 역사적 건물이 아니었지만
낙서전과 팽나무는 긴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리라.
왠지 쓸쓸함이 감도는 자그마한 사찰 경내를
거목으로 자란 우람한 팽나무 두 그루만큼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화마에 휩싸인 극락전 방향의 가지들은 화기를 이기지 못한 듯 빈 가지다
마음이 싸해진다.
내년 봄이면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극락전이 불탄 자리에는 임시로 불전이 세워져 있었다
관광객 대부분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 나도 그에 동참했다.
예전에 이 나무에 기대어 해넘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쓸쓸함을 안고 뒤돌아 오는 길의 심포항을 돌아보는데
그 역시 항구로서 번창했던 시기와 달리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니
풍경을 벗 삼아 차박 캠핑장으로 변한 듯 많은 캠핑카들이 주차되어 있다.
세월의 무상함 곁에는 나의 지난 길들도 섞여 있을까
가을~~ 마냥 달려드는 허허로움을 그냥 그대로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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