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화가 선생님의 전시회에 갔었다.
가끔 접했던 선생님의 그림은 크고 화려하기보다는 무언가 사색적이고 깊은 의미를 주는 작품들이라고 평소에 느끼곤 했기에 친구의 청을 받고 함께 갔다.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던 중 내 눈길을 거두어간 작품이 있었다. 무언가를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 놓은 그림이었다. 알 수 없는 정감이 스쳐 지나며 정겨움을 불러일으켰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나에게 화가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 주신다.
30 년쯤 된 삼베에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색실로 바느질하셨단다. 침묵을 싸서 보내는 상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는 그 보자기 그림에 무한한 신비로움을 느꼈고 그림을 구매하였다. 지금도 안방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평소에도 보자기는 넉넉함으로 내용물의 모습을 다스리는 겸손함이라 생각되어 좋은 보자기를 보면 욕심을 내곤 한다.
명절 때면 보자기에 싼 선물을 받곤 하는데
나는 정작 그 내용물보다도 좋은 보자기를 만나면 너무 좋아 한참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만지며 좋아했다. 그렇게 쌓아둔 보자기가 제법 되었고 가끔 무언가를 보낼 때 그 보자기를 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번 아들 결혼 때 오고 가는 예단을 담은 포장들이 어찌나 예쁘고 고운지 곱게 보관하면서 지금도 한 번씩 꺼내 보며 즐거워한다. 이 틈에 너무 많이 보관한 보자기 몇 개를 골라 장바구니로 만들까 싶어 이리저리 뒤척이며 만지작거리노라니 그 가벼움이 펄럭이며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득히 먼 시절의 운동회 날, 하늘에서 펄럭이는 만국기가 떠 오른다.
운동회 전날의 학교 운동장은 부산하였다. 땅 위에 흰 석회가루를 뿌려 선을 그어 놓는가 하면 긴 줄에 매달은 만국기를 국기 봉에서부터 부챗살처럼 길게 이어 나가며 공중에 매달곤 하였다. 난 언제나 학교에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운동회 날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나가보곤 하였다.
빈 운동장에 서서 작은 움직임으로 펄럭이는 만국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내 마음에 잔잔한 흥을 넣어 주었다. 만국기를 따라 내 상상을 펼치며 올려놓기도 하고 나부끼기도 하였다. 늘 꼴찌를 하던 달리기를 잘하여 상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원도 담았다. 작은 운동장 안에서 그 넓은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펄럭이던 만국기에 쏟았던 정 때문에 더욱 사무치는 것일까. 예쁜 보자기를 보고 만국기가 생각나는 것은 내 어릴 적 마음 안의 들뜸과 기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자기나 만국기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에 기원을 실어 보내는 행위를
히말라야산맥을 이웃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티베트의 타르쵸가 그중 하나다. 타르쵸는 바람에 날리도록 걸어 놓은 오색 깃발이다. 그 깃발에는 경전의 법어가 쓰여 있다. 바람이 경전을 읽고 중생들을 위하여 그 법어를 멀리멀리 뿌려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바람과 일체 되어 온몸을 휘날리며 깃발은 자신에 쓰인 법어를 세상 속으로 보내는 것이다. 깃발이 싸안은 법어의 침묵을 바람의 힘으로 기원하는 행위다.
무언가를 기원한다는 것은 나의 간절함을 보내는 일이다.
그 간절함을 보자기에 정성스레 싸서 보낸다면 받는 사람의 마음도 단정해질 것이다. 정성스레 한다는 것은 나를 낮추는 일이다. 마음의 선물을 보내기 위해 예쁜 보자기를 준비하는 일은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며 자신의 본질을 다스리는 겸손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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