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를 빙 돌아 둘러쳐진 철책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다.
무심히 지나치려는 고개를 다시 돌려 바라보니 거미줄이었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내 눈길이 머문 까닭은 특별함이 스쳤기 때문이다.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거미줄에는 솜처럼 부푼 씨앗이 걸려 있었다.
가을인 지금 민들레 씨앗은 아닐 테고
가을바람에 실려 보내는 어느 가을꽃 씨앗을 닮았다.
거미줄도 신비로웠고
씨앗들이 거미줄에 걸려 있는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어느 화가가 화폭에
화가 자신만의 느낌을 묘사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니 고상하게도 보인다.
거미줄과 씨앗!
이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지만,
아니 잡고 잡히는 앙숙의 관계일 수도 있을 텐데
한데 엉겨서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는 불교 용어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 : 불교의 신)이라 한다.
이 제석천이 거주하는 궁전에는 인드라망이라고 하는 그물이 있는데
그 그물에는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수많은 구슬이 달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물의 구슬들은 스스로 빛날 수 없고
다른 구슬의 빛을 받아야만 자신이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인데
이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아무리 아름답고,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다 하여도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 재주를 환하게 비추어 주는 또 다른 개개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리!
이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엮어있는
우리 삶의 모습임을 알려주는 인간 그물망인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먹이를 얻기 위한 소중한 거미줄이
번식을 위한 소중한 씨앗을 잡고 있으니
내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었고
그에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새롭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을바람과 햇살이 있어 내 발걸음이 따라나섰고
그에 호숫가에서 일렁이는 거미줄 그물망을 보았다.
훨훨 날지 못하고 그물망에 걸렸을망정 그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씨앗!
이 모두는 계절 따라 변하는 사물들의 어울림이지 않는가.
사물과 사물들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은
서로를 빛내주고 있음에서 빚어진 것이리라.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충만해지니
나 역시도 그 한 존재로 저절로 엮어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누구를 비추어 주고 있을까.
이 아름다운 계절의 그물에 나를 한껏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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