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내 마음을 만나는 듯싶은 어색함이 감돈다.
연이은 기록적인 더위 날씨마저 잊은 채
한 일에 몰두하며 지내느라 나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 틈에 은근슬쩍 내 마음이 방향키를 돌려놓은 듯싶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 저녁 산책 시간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닥친 일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안겨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제 한숨 돌리고 나니
그렇게 자지러지게 울던 매미 소리가 그치고
어느새 귀뚜라미의 낭랑한 소리가 내 발끝에 맴돌고 있다.
이들은 어찌 그리도 때를 잘 알고 바통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여태 때를 놓치고 살아오느라 바통 이어받기를 못했던 세월이었다.
호수 산책로 따라
호수 주변을 드라이브하는 자동차 길도 군데군데 구불구불 뻗어있다.
나는 가끔 아침 출근길을 이 호숫길 따라 달리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곤 한다.
그 길 어디쯤 산에 인접한 좁은 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산길이 있다.
그곳은 사유지라서 더 길을 넓힐 수 없는 곳이기에
눈이 내린다든지 비가 많은 날이면 조금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정식 자동차 도로는 아니지만 나는 이 길을 참 좋아한다.
특히 요즈음같이 더운 날에 그 길로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산등성의 나무들이 내려주는 그늘의 청명함이 햇살을 가려 주니
어둡지 않은 알맞은 농도의 밝은 빛의 공간이 되어 나를 차분하게 이끌어 준다.
나는 그 길의 아늑함을 나의 음예 공간이라 부른다.
우선 차도 사람도 많지 않으니 차분해진다.
어쩌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조심스럽게 비켜 가느라 더 찬찬한 마음이 되어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상대 운전자에게 얼굴을 숙여 인사를 하곤 한다.
물론 선팅이 된 유리를 통해 상대도 내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냥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는 모두 내가 명명한 나만의 음예 공간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일찍이 한 일본 소설가의 ‘음예공간 예찬’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저 막연하게 좋아했던 그늘 진 곳의 명석한 해석을 알게 되어 어찌나 좋았던지…
책에 의하면 음예 공간을
“그늘인 듯한데 그늘이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그 무엇’을 뜻하는 것으로 깊이와 시간 속에 손때가 묻은 그 무엇”을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해 주었는데
'그 무엇'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나를 무척 즐겁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단정 지어 구분하지 않고 ‘그 무엇’이라고 헐렁하게 풀어놓았으니
그 헐렁함 속에 얼마든지 내 개인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니 나는 요즈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 익히기 바빴고
어떻게 하면 더 경제적 일지 헤아리느라 삭막해진 내 마음을
이 길로 끌어들여 풀어주는 감정을
‘그 무엇’에 대입하며 혼자 좋아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허름하지만 기분 좋은 음예 공간 속 그 무엇에 나를 대입하는 엉뚱함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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