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외적으로 활동이 많은 편이 아니다.
나의 여건상, 어쩔 수 없는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내 나이 또래 8명 모임이 딱 하나 있으니
근 20년을 지속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만나곤 하면서 끈끈한 정을 나누는 사이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픈 사람도 나오고
활발히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나오니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한 명은 벌써 하늘나라로 갔다.
하여 모임을 하면서 비축해 둔 회비로 여행을 다녀온 후
모임은 계속 이어가되 그때그때 참석하는 사람들만 식사비를 내고 헤어지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렇게 여행 계획을 짜 놓았는데
아들 결혼식에 따른 여러 행사는 내 온 정신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여행 후 결혼 날짜가 잡혀 나 혼자 속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결혼식이 앞당겨진 것이다.
하니 나는 추석 지난 20일에 떠나는 여행에 합류했다.
여행팀은 우리 일행과 다른 모임 일행이 합하여 14명이 한 팀을 이루어 진행하기로 했다.
비축해 둔 회비의 적은 비용에 맞추려니 자연히 가까운 곳,
저가 항공 예약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동남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처음에는 베트남 다낭으로 가려고 했는데
다녀온 사람들이 다수여서 변경한 곳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3박 5일 일정이다.
이른 아침 06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한밤중 1시 40분에 출발하는 공항 리무진을 탔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감흥이 제일 설렌다.
설렘을 안고 공항에 도착하여 모든 절차를 밟노라니 시간의 여유가 없다.
비행기는 말레이시아 국적기 바틱에어 항공이다.
인터넷검색을 하니 우리나라에 취항한 지 얼마 안 되는 비행기라고 하였다.
탑승해 보니 기내는 쾌적했고 3.3 좌석 배열로 약 180명가량 탑승할 수 있는데 빈 좌석 없이 꽉 찼다.
의자 간격도 제법 넓어 다리 불편함이 적을 듯싶었다.
그런데 등받이 화면 서비스도 없고 와이파이나 인터넷 연결이 전혀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나름 사전지식으로 알고서
영화 몇 편을 보려고 핸드폰에 내려받아 왔지만 볼 수 없었다.
나는 로밍을 해 왔지만 기내에서는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야 하기에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에구~~ 이를 어쩌나!!
그나마 비행시간이 6시 30분 정도라서 어지간하면 참을 수 있겠다 싶어
눈을 감고 지난밤 내내 못 잔 잠을 청했는데
웬걸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서 멀미가 올라오는 것이다.
비행기가 작아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림이 많게 느껴지며 조금 무섭기도 했다.
상비약을 먹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비행기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가까워졌는지 육지의 건물이 점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좌석 벨트 등이 켜진다. 나는 더욱더 속이 울렁거린다.
비행기가 속도를 낮추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착륙이 가까워지면 화장실 이용을 못 하도록 승무원들이 지키고 있는데
빨리 움직이는 나를 제지하려던 승무원이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얼른 화장실 문을 열어 준다.
구토하고 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간신히 좌석으로 돌아와 앉아 조금 있으니 비행기가 덜컥하며 착륙했다.
다른 비행기는 유연하게 잘도 내려앉던데~~
그래도 일단 안전하게 도착했으니 안도하는 마음이 크다.
육지가 이렇게 내 마음을 안정시키다니~~
입국 심사를 마치고 가이드를 만나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그곳 시간으로 오후 1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시차는 우리보다 1시간이 늦을 뿐이니 오후 시간도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돌아 갈 때의 걱정은 덜고 여행 일정에 충실하며 열심히 따라다니기로 했다
모두 내 얼굴색이 안 좋다며 걱정한다.
말레이시아는 열대우림기후지역으로 열대 식물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말레이반도에는 6,000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해 왔지만 계속 열강들의 식민지배를 받아왔다.
포르투갈이 1511년에 이곳을 점령하며 유럽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네덜란드에 100년, 영국에 130년, 일본에 3년 반을 지배당하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고 한다.
그 땅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한 나라의 역사는 깊은 맛이 없었다.
다만 여러 풍부한 자원 덕분에 발전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말레이시아는 동말레이시아와 서말레이시아로 이루어졌는데
두 지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동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입국했고 첫 일정으로 푸트라자야를 찾아갔다.
말레이시아의 인구 약 60%가 이슬람교를 믿는 까닭인지 이슬람 모스크가 참 화려해 보인다.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의 행정도시로 인공호수에 둘러싸인 도시다.
이 도시 계획 시 우리의 세종신도시를 벤치마킹 했다고 하니 반가웠다.
이곳뿐 아니라 곳곳에 우리나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자랑스럽기조차 하였다.
이 도시의 건물들은 모두 다른 특징으로 지어졌으며
가로등 하나도 동일한 디자인이 없다고 하니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만
잘 계획된 도시구조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지닌 특별함의 차별성이 더 관심을 끌어가는 것 같았다.
특히 푸트라자야의 랜드마크적인 건축물인 푸트라자야모스크는
건물 전체가 인디언핑크빛이었다.
푸트라자야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잘란알로 야시장을 찾아갔다
거리음식 시장으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에 인기 있는 장소라 하니
구경도 하고 저녁 식사도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다니기가 조심스러웠다
가이드는 미리 예약해 둔 듯, 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중국풍 테이블이지만 중국음식 답지 않은 맛으로 우리에게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음식이었다
모두들 맛나게 먹었지만 나는 울렁거림이 남아 조심스럽기만 하여 조금 맛만 보았다.
야시장을 나와 호텔로 들어가기 전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쌍둥이고층빌딩)의 야경을 만나러 갔다.
말레아시아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이 빌딩은 높이 452m, 88층 건물로 1998년에 완공했다는데
이 건물은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쌍둥이 빌딩으로 오른쪽 빌딩은 일본이 수주하여 올렸고
왼쪽 빌딩은 한 달 늦게 우리나라가 수주하여 짓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우리는 새로운 기법으로 먼저 짓기 시작한 일본보다 빨리 완공했을 뿐 아니라
설계도에 없었던 두 건물 사이의 다리를 뒤늦게 설계하여
누가 지을 것인가를 공모했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나서지 않았는데, 아니 못 했는데
우리나라 극동건설이 나서서 41층과 42층 두 층 사이에 두 빌딩을 연결하는 다리를 성공했으니
백미의 기술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빌딩을 지은 후 말레이시아의 고속도로 건설을
우리나라가 맡아했음은 물론이었다고 하니 다시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호텔에 체크인했고 잠을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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