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뜬금없는 책 읽기

물소리~~^ 2024. 8. 16. 21:48

 
 
 
아침 일찍 일어나면 곧바로 베란다로 나간다.
매일 더운 날씨의 연속인지라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켜고 있다가 베란다에 나가면
이른 아침임에도 후텁지근한 공기가 훅 끼치면서 내 몸을 감싼다.
식물들은 얼마나 더울까~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으니 참 기특하다.
내 일상의 아이콘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요즈음 무언가 바쁜 일에 집중하다 보니 내 마음이 시큰둥해지고 있다.
어디 이들에게만 내가 등한 시 하고 있을까.
 


어제저녁에는 모처럼 티스토리에 들어가 피드에 올라온 글 제목들을 쭉 훑어보았다.
순간 나는 여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현기증이 올라왔다.
일상에서 겪은 일을 올리고 서로의 동감을 주고받으며 만끽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인 것을 나는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는 일 없이 지내진 않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감정의 끈을 붙잡고

글을 쓰겠다고 마음 다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요즈음 내가 무언가의 글을 쓴다면 당연히 지금 나에게 닥친 일의 내용으로 나갈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경험했던 일을 나로서는 이제야 만나 헤쳐나가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나열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지나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이다 보니 자연 티스토리가 뜸해지고 있었다.
글벗님들에게서 무언의 동기부여를 받아서인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조바심에 뜬금없이
언제인가 구입해 놓은 김훈 작가 산문집 ‘허송세월’을 펼쳤다.


 

 


이 작가의 책을 참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면 꼭 읽곤 하는데 겨우 몇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다시 열고 읽기 시작하는데 작가의 문장이 좋아 몇 번을 거듭해서 읽곤 했던 예전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왜 이렇게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할까? 하는 건방진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 가득한 어렵고 까다로운 세상사 때문인 것을 …그런데 깜짝 놀랐다.
작가는 다음 페이지에서 답변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한 생애가 강물같이 흐름을 이루지 못하고 파편으로 부스러져 있다. 삶을 구겨버리는 그 무질서가 아무리 진지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려는 과장된 어조와 단정적 서술을 이제 견디기 어렵다. 책값을 내고 이걸 사서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이 자학적 수치심은 오래된 고질병인데 증세는 악화 중이다.’ p 142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가가 스스로 느꼈다는 수치심은 나에게 죽비로 다가왔다.
갑자기 앞편에 읽었던 ‘조사 에 를 읽는다’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아까 섬광처럼 지나가던 한 생각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한글에서의 조사(助詞)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조사 ‘에’의 존재? 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작가가 논한 조사는 문구와 문구 사이를 접속시켜 주는 연결사이며
서로의 인과 관계를 형성해 주는 토씨라고 나는 이해했다.
또 조사는 느슨하고 어슴푸레하다고 했다.
작가는 조사 ‘에’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다라는 말로 글을 마친다.
그에 나는 '에'라는 한 단어는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자유의 공간을 열어 낸다는 문장에서
문득 우리 아버지를 생각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 무렵, 우리는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운동장 조회를 했다.
그 조회의 맨 처음 순서는 언제나 교장선생님 아니면 교감선생님의 훈화였다.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교감선생님이셨기에 자주 단상에 오르셨다.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도 과묵하시면서 말주변이 없으셨다.
그래서인지 훈화를 하실 때면 늘 말씀 중간에 에~를 하셨다.
나는 조회때면 아버지께서 ‘에’ 소리를 조금만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단상에 오르시니 우리 담임선생님이 바짝 내 옆, 앞으로 오시더니
뒷짐을 지고 계시면서 아버지께서 에~ 하실 때마다 손가락을 꼽으며 헤이리시는 것이다.
나는 금방 그 뜻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10번을 안 넘기시면 좋겠다고 나대로 셈을 하고 있었고
다행히 7번에 훈화를 마치셨다.
담인선생님은 뒤돌아 나를 바라보시면서 씩 웃으며 걸어가시는 게 아닌가.
 
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뜻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말을 하다가 뒷말이 곧 나오지 않아 생각을 정리할 동안 내는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아버지께 딱 맞는 의미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조사 한 단어로 아버지 생각에 이어지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담임선생님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니
'에'는 나와의 인과 관계를 형성해 주고 있는 토씨임에 틀림없다.

우리 아버지의 말씀 속 '에'는

말로는 다 표현하시지 못한 아버지의 진심이 가득 고여 있었을 것 같다.

행여 이 어쭙잖은 글을 우리 아버지께서 하마 읽으셨을까

내가 무엇 때문에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알고 계실 것 같만 같다.

하여 더욱 그리운 울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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