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는 마음을 부산하게 한다.
왜 갑자기 이불 빨래 생각이 나는지…
얇은 여름이불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늘 해오던
청소, 빨래, 반찬 만들기 등 일요일 일상을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해 놓고 나니 11시가 조금 지났다.
눈이 자꾸만 밖으로 향한다.
장마가 계속되면 산에 오르는 일도 뜸해질 텐데 하며
가지런히 정돈된 집안을 뒤로하고 살그머니 뒷산을 올랐다
장마를 머금은 날씨는 찌는 듯 더웠지만
일단 산에 오르면 숲 그늘과 바람이 있어 그리 더운지 모른다.
오솔길을 걷노라니 길 양쪽의 초록 나무와 초록 풀들로 인하여
초록의 압력이 팽팽한 느낌을 안겨준다.
아, 요즈음 어느 잠수정이 해저 4,000m에서 내파로 폭발했다는데
우리 뒷산도 꽉 찬 초록 압력으로 터지는 것 아닐까?
아, 하늘을 바라보니 뻥 뚫렸네~
하늘로 올라가는 초록기운이 있어 폭발은 아니하겠구나.
열심히 조심조심 걷는다.
후끈한 열기가 내 몸으로 달려들지만
나도 하늘에게서 빌린 작은 마음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더운 기운을 데리고 나간다. 시원하다.
하나하나 만나는 꽃들과
봄꽃이 진 자리에 맺은 열매들이 자꾸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들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빛으로 만나고 있지만 참으로 멋진 어울림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나를 끌어들이지만
나는 그저 걸으며 바라보며 신기하고 예쁘다고만 생각한다.
이런 나의 감성은 나의 본성이 아니고 사물을 만난 후 생겨나는 것인 즉
감사함으로 여기며 예로서 지키려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앞에 떡하니 예덕나무가 서 있다.
그래~ 산에서 지키는 예와 덕을 알려주는 나무이기에 어여삐 바라본다.
눈으로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떠오른다.
몸은 후줄근히 젖었지만 마음만큼은 더없이 상쾌하다
도둑놈의 지팡이가 숲을 지키며 서 있으니
이번 장마는 아마도 순하게 지나가겠지…
'꽃과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사화 피는 계절에 (35) | 2023.08.30 |
---|---|
킹벤자민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58) | 2023.08.08 |
하지에 만난 굴피나무 (43) | 2023.06.20 |
마삭줄 꽃향기 속에서 (44) | 2023.05.29 |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0) | 2023.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