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낮은 바람이 조금은 사나웠던 날이었다.
토요일인 만큼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인데
남편이 서울 다녀오는 일정이 있어 일찍 서두르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남편이 출발한 후,
물 한 병과 바나나 한 개를 챙겨 산자고를 만나기 위해 나섰다.
신시도의 대각산은 산자고와 보춘화 자생지로 알려지면서
봄이 되면 전국의 진사님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지난 주말쯤에 한창이었을 텐데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동안 쫓기는 듯싶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집트 때문에 ㅎㅎ
등산로 입구는 햇살이 가득했다.
바람도 추웠는지 양지쪽을 찾아 스르르 잦아들며 봄맞이하는 듯싶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봄기운을 한 움큼 싸 들고 와서
문득문득 한기가 스며드는 마음을 지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남산제비꽃이 눈에 보인다.
세상에!! 그랬구나! 봄과 함께 온 제비꽃이 더없이 반가웠다.
변치 않는 자연의 질서 따라 봄이 오고 있으니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도 이처럼 변하지 않는 질서가 있음은
참으로 축복이 아니겠는가
꽃샘추위의 시련도 역시 하나의 질서라 생각하면서 즐겨한다.
시리게 다가오는 상쾌함을 먼저 받아들이면서…
그런데 월영재를 내려와 갈대밭을 지나면서부터
몸의 기운이 쫘악 빠지면서 허기가 지는 것이다.
무어지? 아침이야 늘 챙겨 먹던 대로 간단히 먹었는데 무슨 일이람~
이 상태로는 산을 오를 기운이 없을 것 같았다.
하여 몽돌해변 근처에 간이음식점 한 곳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한 번도 이용하지는 않았는데
만약 그곳이 음식점이라면 조금 이른 점심으로 먹고 기운을 차리고 싶었다.
다행히 해물칼국수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팀이 앉아 있기에
한 명도 먹을 수 있느냐 물으니 당연하지요~ 한다
칼국수를 시켜 놓고 앉아 기다리는데 참 감사함 마음이 들었다.
꽃들이 나에게 기운을 내라며 인도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깔끔한 차림의 칼국수가 양재기? 그릇에 담아 나왔다.
해물칼국수이어서인지 홍합과 바지락 게 오징어 등 각종 해물이 푸짐하니 맛있었다
내가 소식이라 무얼 먹든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는데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먹었다.
나 스스로도 놀랐지만, 왠지 자꾸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기운이 난다. 그래 이제 꽃을 만나러 올라가자.
자연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행여 되돌아갈까 봐
산의 꽃들이 그렇게 나를 초대해 준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즐거운 마음이다.
덤불 사이에 어지럽게 피어있는 산자고들이
그나마 내 마음에 확 불을 지펴준다.
내가 조금 늦게 왔을까? 예년보다는 유난히 초라해 보였지만!!
오늘 월영재를 먼저 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만약 월영재에서 월영봉으로 먼저 올랐다면 나는 허기져서 되돌아갔을 것!!
와! 오늘은 진짜 행운의 날이다
보춘화를 만나다니~~
이곳이 산자고와 보춘화 자생지로 알려지면서
보춘화를 캐 가는 사람들로 보춘화가 사라져 가고 있으니
나는 여태까지 보춘화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정말 좋았다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비탈진 곳이었다
내가 미끄러운 비탈에서 조금은 위험한 동작으로 계속 사진을 찍고 있다면
지나는 사람들 무슨 꽃이지 하며 다가오기 마련~
하여 얼른 두 번만 셔터를 누르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 두 개체라도 더 번식을 해야 하는데 또 누군가가 보면 가져갈 수 있으니 시치미 떼야한다.
사진만을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예쁘다
또 가고 싶다
아니!! 아니!!
이곳은 보춘화 몇 그루가 자라고 있었네
오늘은 나에게 무슨 날일까!!
산자고는 조금 늦게 와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춘화를 두 번이나 만나다니~~
그런데 이곳은 눈썰미 좋은 진사님들은 찾아내고 말 것 같은 등산로 가까이에 있었다.
나에게 봄빛은 연둣빛 노랑이다. 그 빛을 처음 발견한 것은 생강나무 꽃에서였다. 이른 봄 이른 아침 뒷산 오솔길에서 호랑지빠귀새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발맘발맘 걷다 문득 만나는 생강나무의 여린 꽃빛은 나의 숨을 멎게 할 만큼 고왔다. 연약하면서도 부드럽고, 제 안에 연두 잎 빛을 품고 피어 있는 생강나무의 꽃, 그 빛을 나는 연둣빛노랑이라고 명명해 주었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들을 조우하는 나만의 기쁨을 아낌없이 누리곤 했다.
그러다 윤대녕의 상춘곡에서 나만의 봄빛 연둣빛노랑에 소리를 담아주는 문장을 만나고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나는 문득 잠든 내 얼굴에 감겨드는 이상한 빛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지요. 그것은 아주 은은하고 부드러운 생기가 느껴지는 빛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머리맡 문살 창호지에 바늘 끝 같은 것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 같았습니다, 오래 그 소리에 귀를 던져두고 있다가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았지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요. 그것이 문살 창호지를 투과해 들어오는 연둣빛 봄햇살 소리였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읽을 때마다 내 감성의 곡선이 꿈틀거리는 문장이다. 또한 작가는 편지를 마치는 마지막 문장으로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라며 끝을 맺으니 마치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내 안으로 번지며 나를 착한 마음으로 이끌어 준다. 어쩌면 이제는 홍진에 뭇친 분내보다도 이 문장을 외우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 나의 예전 글의 일부를 가져왔다 -
이제 월영봉으로 올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등산로는 자잘한 바위들로 있어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쉽다
조심조심 한 눈 팔지 말고 한발 한발 걸어야 한다
땅만 바라보는 느릿한 내 행보에 맞춰 봄 햇살이 내 등에 가득 내려앉았다.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하다.
회양목은 나무질이 단단하여
도장 만드는 재목으로 쓰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심호흡하며 바라보는 새만금방조제와 신시도 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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