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벽분기점 전망대에서 남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놀았다.
용암이 분출되며 흘러내리다가 굳어
백록담을 감싸고 있는 저 늠름한 모습을 용암언덕(라바돔)이라고 하는데
순간 순간 굳어지며 생성된 표정들이 참으로 신기하다
이곳에 오면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데
하늘은 오늘 나에게 무한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돈내코 숲길을 걸으며 숲 가득한 피톤치드로 목욕을 한 탓일까
모든 것이 싱그럽고 시원하다. 내 몸도 건강하다.
이곳을 가꾸는 것은 바람과 햇빛이다.
고원지대에도 바람들이 살고, 햇빛이 스며든다.
바람과 햇빛은 모든 생명에 양식을 제공하니
나 또한 바람과 햇빛을 온몸에 담으면서 이 고운 길을 걸어왔다.
아쉬움을 안고 윗세오름으로 향하는데
남벽은 자기 몸을 틀어가며 나를 배웅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시렵니까? ” 하듯 자꾸 자꾸 나를 따라온다.
행여 돌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 조심 걷는데
문득 덤불 사이에서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설앵초꽃을 만났다.
초록잎 그물망에 걸린 햇살들이
용케도 한 줄기 빛을
작은 설앵초꽃에 보내고 있었다.
어쩜
붉은빛 잎으로 하트를 만들어
공손히 내밀면서 말없이
사랑의 소중함을 알려 주고 있으니
지난 세월동안
내가 지녔던 사랑의 마음들을 뒤돌아보았다.
너무 부족했던 사랑도
너무 지나쳤던 시랑도
부질없음을~~
사랑은 오직 이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보내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곳 대피소에서 어제 오설록에서 샀던 녹차롤빵으로 대충 점심을 챙겼다
이것 마저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물만 마시는 산행이 될 뻔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마음이었는지.....
사실 대피소의 매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했는데
윗세오름대피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언가를 공사하고 있으면서
대피소 장소만 제공하고 있었다.
이제 영실로 내려 가는 길,
작년에 운무로 만나지 못했던 풍경들을 오늘은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한라산 선작지왓은 윗세오름 근처 해발 1600 m 정도에 위치한 평편한 관목지대이다.
'선작지왓'은 제주 방언으로 '돌이 서 있는 밭'이라는 의미이며
털진달래와 산철쭉 군락지로 4월~6월에 꽃이 개화하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겨울철 선작지왓의 설경 또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영실을 내려오면서 내내 이곳이 한라산이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만큼 깊고 높은 산이라기 보다는
아늑한 풍경을 품은 아담한 산이라는 착각을 자주 한 것 같았으니
사람들이 영실코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 여한이 없다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흰그늘용담, 설앵초, 세바람꽃, 섬바위장대, 섬매발톱나무 를 만나기도 했고
한라산의 등산로 5곳을 모두 밟았기 때문이다.
계측기를 나서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 바라보며
한라산에게 안녕~~
오후 3시 약속 보다 20여분 늦었다.
저쪽에서 아들이 빵빵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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