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중에서
내가 가끔 일탈하는 시간은 출퇴근길을 달리하여 운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동선이 그려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퇴근길에 차들이 정체되는 지점에서
살짝 근처의 대학교 후문으로 진입을 하는 일이다.
그 길은 대학교 중심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교정 주변을 잠깐 돌다 근처 마을로 빠지는 한적한 길인데
봄이면 양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이 시원함을 내려주고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차 꽁무니를 따라 나서는 길이다.
요즈음 같은 겨울이면 빈 나무들만이 서 있는 길이지만
그 길을 빠져 나가는 마지막 지점에 커다란 연지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백련지인데 여름철의 환한 꽃들도 아주 예쁘지만
요즈음의 蓮池에서는
꺾은 몸으로 서있는 연들의 기하학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일부러 찾아드는 길이다.
어제도 퇴근길에 그 길을 따라가다
석양빛이 가득 고인 연지 모습을 보고
빛이 스며드는 곳에 기쁨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스르르 차를 멈췄다.
가만히 서서 몸이 꺾어진 채 서 있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한 생각이 연결되면서 웃음이 나온다.
작은 아들의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분양신청을 했는데 두 번 만에 당첨이 되었다.
계약을 진행하는데 아파트 내부는 기존만 분양가에 포함되고
세부적인 것은 모두 옵션으로 선택계약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들과 옵션 항목을 쭈욱 살펴보면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야하는지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아들이 식체기는 필요하고 음처기는 필요 없다고 한다.
“엥? 그게 무엇인데?”
아들이 말하기를 식체기는 식기세척기이고 음처기는 음식물처리기 란다.
느닷없는 말에 한참을 웃고 나서
“세종대왕님이 아시면 너 혼나겠다.” 하니
세종대왕님도 요즈음의 줄임말을 이해하실 거라고…
꺾어진 말들이 대세인 요즈음~~
저 연들도 그렇게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제 몸에 품은 지난 세월의 곧은 말들을
꺾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말 蓮들은
줄기 속은 비었지만 곧게 자라고
덩굴도 치지 않고 가지 또한 치지 않으며 올곧게 자라다가
겨울 연지에서는 제 몸을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꺾인 몸을 물속에 그대로 비추면서 완전 대칭형을 이루고 있으니
어쩌면 완전한 언어를 암시하고 있을 것인데...
오늘의 저 蓮들은 지금 무엇이라고 나에게 말 하고 있을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그때마다 다른 상상력으로
아는 체 하는 나를 얼마나 우습게 바라보고 있을까
살아가면서 이것저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빈 마음으로 올곧게 살아가노라면 비록 초라하게 꺾인 몸일지언정
언제 어디서든 참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 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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