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산을 좋아하지만
요즈음 사회적 현상으로 거리두기를 장려하고 있으니 나는 더욱더 산을 찾아 나서고 있다.
지리적으로 먼 곳의 산이 아닌, 가까운 뒷산, 공원 산, 우리 지역의 이름난 산을
주말이면 1시간 내, 혹은 3시간 정도를 걸어 다녀오곤 하는데
마치 최적의 격리공간에 들어서는 듯싶기도 하니
우리는 어쩌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게 마련인가 보다고 혼자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한적한 산을 오르다 한 작은 산사의 일주문 앞에서 광대수염 꽃을 만났다.
봄 들녘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은 일단 나를 쪼그려 앉게 한다.
그렇게 앉아 꽃을 바라보노라니 광대라는 이름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광대의 사전적 의미로
(1) 판소리, 가면극, 곡예 따위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
(2) 탈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탈 이라고 설명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님들은 들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꽃들이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광대라는 말을 붙여 이름을 불러 주었던 것이다.
옛 우리의 놀이였던 탈놀이, 외줄타기, 판소리 등에
재주를 가진 예능인을 뜻하는 말이 광대인 것이다.
요즘은 재주가 많은 연예인들은 폭발적인 대접을 받고 있지만
옛날에는 천한 직업으로, 천한 존재로 여겼었다.
하니 내가 이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던 계기는 아주 오래 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한 소설 속에 나오는 어릿광대 이야기를 읽고서 부터였다.
내가 올 봄에 만난 광대라는 이름을 가진 들꽃으로
광대수염, 광대나물, 자주광대나물이 있다.
▼ 광대수염
광대수염은 꽃모습이 광대들이 쓰는 모자처럼 보일 뿐 아니라
줄기를 가운데 두고 빙 돌려 핀 꽃들은 무언가를 바라보며 경계하는 듯싶고
꽃받침 주위에 나 있는 뾰족한 가시를
점잖치 못한 수염처럼 바라보았던 해학을 지닌 마음에서 작명되었던 것 같다.
▼광대나물
광대나물은 코딱지풀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정말이지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그냥 눈이 퀭한 어릿광대의 어린 소녀 얼굴이 떠오르면서 애잔함이 밀려온다.
꽃이 먼저일까 이름이 먼저일까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재주를 부렸던 어린 소녀의 모습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는 듯 세세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니
사물들을 사람과 구별하며 생각한 적 없는 조상님들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 같다.
▼ 자주광대나물
꽃이 광대나물과 비슷하고 잎이 자주색이어서
자주광대나물이라 불리는데 다른 꽃에 비해 푸짐한 몸집이어서인지
왠지 조금은 광대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인다.
이 꽃에서는 애잔함 보다는 그냥 거부감이 느껴지니 내 마음도 참 별나다
*****
해마다 피고 지는 봄꽃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비록 말로 표현은 못할지언정 어쩌면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니고
단순 반복되는 노동을 즐겁게 행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에 해마다 봄꽃들을 만나며 즐거워하는
단순히 반복되는 내 마음도 노동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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