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선루(睡仙樓: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나의 주변에 숨겨진 자연의 신비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니 숨겨진 비경을 만날 때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 그 비경을 벗 삼아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만날 때면 더욱 관심이 커지곤 한다. 몇 백년 전에 살았던 조상들의 흔적이 어쩌면 오늘날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아련함이 나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나의 주변에서도 이런 자연의 신비함을 언제든지 만나 볼 수 있으니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장소에 아이들이 다 돌아간 추석 연휴 마지막 하루를 틈 타 남편과 다녀왔다.
우리 道내의 진안은 노령,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산간지역으로 진안고원이라고 한다. 진안고원에서 가장 유명한 마이산은 중생기시기의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곳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랜 세월을 거친 역암으로 뭉쳐진 巖산이다. 일부러 굵은 자갈과 모래를 범벅인 시멘트를 굳혀 만든 산처럼 특이하다.
이런 특이함으로 지난 6월 말 진안은 환경부로부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 받았다. 지질공원 지정은 지질학적 가치로 지정하는 것이지만, 기이한 형태의 경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니 지질공원 지정은 곧 이곳이 관광명소가 될 훌륭한 요건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은 물론 지금도 유명한 마이산이다.
마이산 표면에는 ‘타포니’라는 커다란 구멍이 벌집처럼 형성돼 있다. 역암을 형성하고 있는 돌과 모래가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떨어져 나가 생긴 크고 작은 구멍이다. 진안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대형 타포니의 자연 그대로 공간을 이용해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마령면 강정리의 수선루이다.
▲ 수선루가는 길
▲ 애기나팔꽃
동안 마이산에는 여러 번 다녀왔기에 마이산이 아닌 우연히 알게 된, 수선루와 쌍계정을 다녀왔다.
수선루는 조선 숙종 12년(1686)에 연안 송씨 진유, 명유, 철유, 서유의 네 형제가 선조의 덕을 기리고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세웠다. 이들은 우애와 학식이 두텁고 효심이 지극 했으며, 나이 80이 넘어서도 아침저녁으로 이 정자에 올라 바둑과 시문을 즐겼다. 섬진강변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리한 이곳은 주위 경관이 빼어나고 송씨형제의 풍류가 신선이 노는 것과 흡사하다 하여 관리 최계옹이 ‘드리울 수(垂)’에 ‘신선 선(仙)’자를 써서 수선루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선루에 오르는 길은 지난 태풍의 흔적들로 조금은 어지러워 졌다. 고즈넉한 길섶에는 애기나팔꽃, 쥐꼬리망초, 닭의장풀 들이 잔잔히 피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꽃들을 만나면 꽃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나를 환히 반겨주는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잠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수선루로 향했다. 아담하지만 튼실하게 쌓인 석축과 돌계단이 정겹다.
태극문양의 문이 출입문 같았다.
다행히 문고리만 걸려 있고 잠기지는 않았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잘 다듬어 놓은 통로와 커다란 바위가 와락 다가온다.
대청과 방은 2층 구조가 아닌, 단을 높여 구분 했으니
바위의 공간안에 더 높일 수 없는 높이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혜로움이었다.
▲ 방의 벽면에 그린 민화
▲ 암석에 새긴 글씨
'송씨 수선루'
▲ 읽을 수가 없다
▲ 지붕과 맞닿은 바위
▲ 암석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으니
암반수? 일까? ▼
▲ 시원한 바람을 맞기 위해 문을 열고 매달아두는 것은 언제 보아도 멋스럽다.
▲ 머리가 천정에 닿으니 똑바로 설 수 없는 아담한 대청에서
▲ 담장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수선루를 나와 쌍계정을 찾아가면서 풀숲의 꽃들을 만났다.
▲ 들깨풀
▲ 참싸리
▲ 산박하
▲ 배초향
▲ 고마리
▲ 뚱딴지(돼지감자)
▲ 나비나물
▲ 내비도 정확히 말 할 수 없는 곳을 한참 헤매다 발견한 쌍계정
쌍계루 찾아가는 길은 내비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듯,
어정쩡한 장소 앞에서 목적지 근방이라며 안내를 종료한다고 말하고서 쏙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 쌍계정에 닿는 길은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타포니는 아니지만,
바위 동굴 안에 숨기듯 들여놓은 또 다른 정자는 쌍계정이다.
1886년에 지은 이 정자는 4분의 3이 동굴 안에, 나머지 4분의 1이 동굴 바깥에 있다.
최치원이 등장하는 건, 신라 때 최치원이 이쪽 지역에서 태산 군수를 지냈다고 하여서란다.
최치원이 신라 때 여러 지역의 군수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푼 덕이 있어서일까?
곳곳에 그를 기리는 서원도, 장소도 참 많이 남아 있다.
▲ 이곳에도 정자 안, 바위 아래 물이 흐르고 있다.
진안의 이곳에는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으니
저기 보이는 강줄기는 아마도 섬진강의 상류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 쌍계정에서 바라 본 추석 지난 가을하늘
쌍계정은 수선루에 비해 관리가 많이 부실하였다.
쌍계정에 닿는 길은 잡초들이 뒤엉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명한 마이산도 좋지만
숨겨진 비경에 자리한 정자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나로서는 재밌는 일이다.
▲ 쌍계정 앞에서 놀고 있는 잠자리
▲ 며느리배꼽
▲ 노박덩굴
▲ 벌개미취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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