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 달마산 도솔암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 손바닥만 한 마당을 지니고도 우주를 품은 도솔암을
백 개의 꽃등이 환히 불 밝히며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
▲ 제 몸 가득 백화등 꽃을 피우고 도솔암을 지키는 바위
땅 끝으로 달려가던 산맥이 그냥 바다 속으로 빠져 들기에는 너무 아쉬웠는지 땅 끝에서 그만 발길을 뚝 멈추고 몸을 세워버린 듯싶게 솟아오른 산, 전남 해남의 달마산이다. 정상 높이가 고작 489m밖에 되지 않지만 오르기에는 설악산의 공룡능선 못지않은 암릉산이다.
지난 6월 15일 토요일, 계획은 미황사에서 달마산을 올라 능선을 따라 이(북쪽) 끝에서 저(남쪽) 끝까지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달마산에는 2년 전부터 미황사에서 출발해 달마산 팔분 능선쯤을 감고 도는 둘레길, ‘달마고도’ 가 생겨났다. 능선 따라 걷는 길보다 훨씬 편안한 둘레길이 생기면서 달마산의 명성이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니 대부분의 산객들은 중간에서 달마고도를 택해 걷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편안한 길보다 정상에 올라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 미황사 대웅보전과 달마산
능선까지 올라 능선 따라 걷는 일은 달마고도를 걷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산을 이루는 바위들은 날카롭게 쪼개지는 규암이기에 암봉을 건너갈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우뚝우뚝 솟은 괴석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지만 속살을 밟고 보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길인 것이다.
손도 발도 디딜 수 없는 구간에 매어놓은 밧줄을 붙잡고 오르다가 돌출된 바위 끝에 머리를 찧고 나는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를 냈다. 이만큼만 아프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달마봉을 지나서는 아슬아슬한 칼날 능선을 걷는 구간도 있다. 너덜겅 구간을 딛고 가야 하는 길도 있다. 행여 발이 돌 틈에 끼일까봐 줄곧 발끝을 보며 걸어야 하고, 빨리 걸을 수도 없다. 그나마 잠깐씩 바라보는 하늘과 먼 바다 풍경이 안겨주는 평화로움에 힘듦을 잊을 수 있으니 여기까지는 암릉의 산길이 보여주는 고행이자 묘미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위가 뒤엉킨 길은 발자국을 남겨놓지 않고 정확한 등산로를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지워진 등산로에서 알바를 서너 번 하고 나니 겁이 난다. 4.7km에 달하는 짧은 능선위에서 잘못하면 하루 종일 헤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선 등산객을 따라 나섰지만 그이들 역시 문바위 앞에서 알바를 하고 말았다. 다시 내려가서 올라야 한다는 그들의 판단이었지만 나는 그냥 문바위에서 다시 미황사로 내려오고 말았다. 2시간 만이었다.
▲ 도솔봉 주차장
그렇게 나는 미황사로 다시 내려와 달마산 남쪽 끝으로 13km를 차로 달려 서너 대의 주차 공간이 있는 도솔봉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700m 만 걸으면 도솔암에 도착하는 것이니 나는 어쩌면 달마고도를 걸어 이곳 도솔암까지 편하게 도착하는 마음들보다도 더 부끄럽게 쉬운 길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울창한 숲길이면서 오롯한 길을 따라 걷노라니 편하게 왔다는 미안함도 잠시 뿐, 금방 능선에 다다르니 마음이 향기롭다. 문득 확 트인 공간에 이르니 암봉들이 도열해 있다. 아찔한 암봉 아래로는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오롯한 오솔길가는 향기로운 쥐똥나무도, 소나무를 휘감고 오르는 백화등도 지천이니 향기로움에 절로 코끝이 올라가고 마음이 마냥 풍요로워지기만 한다.
▲ 바위와 사이좋게 놀고 있는 백화등 덩굴
▲ 쥐똥나무
▲ 도솔암
700m라는 숫자상으로는 짧은 거리지만 내 몸이 느끼기에는 만만치 않은 길을 걸으면 이내 아주 작은 암자 앞에 당도한다. 깜짝 놀란 마음으로 잠시 멍하니 서서 암자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곳이 현세인가 내세인가. 천 길 허공에 걸려 있는 작은 암자 하나!
암자를 호위하듯 서있는 우람한 바위들이 든든한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을까. 대문 역할을 하는 앞쪽의 또 다른 바위에는 백화등이 가득 피어있다. 향기를 뿜으며 암자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듯싶게 같이 높은 곳에 아스라이 피어 있으니 아! 감탄이 절로 난다.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수백개의 꽃등으로 도솔암을 밝혀주고 있다고 믿었다.
▲ 바위와 바위 사이를 축대처럼 쌓아 올렸다.
▲ 법당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이곳 도솔암에서 수행정진 하였던 유서 깊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한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패배하고 해상통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거하던
왜구들에 의해 불타버린 뒤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았다고 한다.
30여 년 전부터 여러 스님들이 복원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터,
2002년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스님이 연속 3일간의 선몽 중
현세에서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이곳 도솔암 터를 보고 찾아 와,
32일 만에 단청까지 마치고 지금의 법당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복원을 마칠 수 있었음은
부처님의 가피력과 법조스님의 시절 인연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불가사의한 불사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목자재 및 1,800여 장의 흙 기와를 손수 옮겨온 뜻있는 사람들의 공력이 함께한 법당이다.
2002년 6월 16일 낙성식을 하고, 2006년 10월에 삼성각을 건립하였는데
이 삼성각 또한 법당과 주변경관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으니
과연 천혜의 자리에 자리한 도솔암이다.
▲ 느티나무와 법당
절로 법당의 부처님께 머리가 조아려진다. 이리 저리 둘러보려 해도 그곳이 그곳으로 발걸음이 맴돈다. 너무 짧은 거리의 공간이기에 법당 모습도 기대어 자라는 느티나무도 내 카메라 안에 온전한 모습을 담을 수 없다. 쌓아올린 축대인가, 담인가 아래를 굽어보니 까마득한데 아 멀리 분홍빛 등 하나가 보인다.
▲ 우람한 광배바위 아래 보이는 빨간 등 하나
▲ 저곳은? 문득 저 아래에 닿으면 이 암자 전체 모습이 보일 듯싶어 무작정 내려갔다
▲ 삼성각
▲ 삼성각에서 바라본 도솔암
아,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암자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콩닥거린다. 초파일 등 하나 걸려 있는 곳은 삼성각이었다. 아주 커다란 광배바위 아래에 위치한 삼성각에서 바라본 암자의 모습은 진정 허공에 달려 있는 그림 한 폭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 남은 분홍 초파일 등은 이곳을 알려주는 표시등이었나 보다.
▲ 나무로 만든 조형물~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다.
▲ 팥배나무
부처님의 은혜가 많은 땅에서 자라서인지
모든 나무들이 튼실하다.
▲ 소나무를 휘감고 자라는 백화등
마삭줄과 모습도 향도 비슷한데
나는 꽃자루의 길고 짧음으로 두 꽃을 구분한다
꽃자루가 길면 백화등, 짧으면 마삭줄
암자! 이름에서부터 나의 정감을 부쩍 당겨가는 힘이 있다.
큰 절과 달리 작은 몸짓으로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를 만나면
내 마음까지도 정결해지곤 한다.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는 고요를 휘감고 있는 암자를 만나면
내 몸은 절로 가벼워지고 있으니
그 가벼움의 즐거움을 잊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단하고 거친 내 인생을
가끔 이렇게 칭찬하도록 만드는 처연함에 심취하고픈 것이다.
내 정성이 비록 미치지 못할 지라도 말이다.
오늘은 그렇게
백 개의 꽃등을 켜고 암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꽃, 그리고 암자를 마음에 담았다.
▲ 전망 좋은 곳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자꾸만 내 모자를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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