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개운치 못한 수면이었는데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는 이상스레 깊은 잠을 잔다. 어젯밤에도 10시 못되어 잠을 자기 시작하였고 눈을 뜨니 새벽 4시 50분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어나 앉았지만 간밤의 꿈이 선연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뵈었던 것이다.
17년 전 4월 초파일, 나무들이 초록의 나뭇잎을 여한 없이 내뿜기 시작하는 계절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셨다. 하니 해마다 초파일 전 날은 아버지의 기일 인 것이다. 올 해의 그날, 나는 미국 여행을 떠났다. 날짜의 선택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변명하며 속으로만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교직에 몸담고 계셨기에 이제는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유족연금을 받고 계신다. 여행에서 돌아와 어머님의 통장 정리를 해보고 난 그만 깜짝 놀랐다.
조** 이름으로 십만 원이 입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의 제자분이신데…
아버지 돌아가신지 17년이나 되었는데도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이제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께 보내드리고 계신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도 안 계시고하니 그만하라고 권유도 하셨지만 그분은 한결같이 5월 스승의 날이면 이렇게 성의를 보내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물론 그분의 지금까지의 생활이 되도록 아버지께서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셨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그 사랑보다는 그분의 한결같음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실천하려는 뜻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이치를 잘 전달하기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실천하고 계심은 다분히 그 분의 근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단순히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기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니 조심스러울 뿐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울 어머니 자꾸만 기억을 잃어 가신다. 그 분 말씀을 전해 드리니 ‘그랬구나~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하시고도 금방 까맣게 잊어버리신다.
아버지덕분에 난 초등학교 내내 아버지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울 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데면데면하셨다. 공부하라는 말씀 한 번 안하셨고 우리를 챙겨 주시지 않았다. 오히려 난 역차별을 받았다고 느꼈다. 교장 선생님 딸이기 때문에 그냥 상 주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며 시험 잘 봐서 받는 상조차 못 받게 하셨던 것이다.
학부모로서 딱 한 번 나의 담임선생님을 만나신 것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진학을 위한 상담시간이 유일무이하다. 대입에 실패하고 공무원시험으로 공무원이 된 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할 때, 우리 집에 오셔서 낮 동안 당신 혼자 방 도배를 다 하시고 팔과 목이 아프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왜 그렇게도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순간 아버지의 정을 다 받은 것 같은 느낌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 정에 대한 기억은 나로서는 짧은 것임에도 자랑스러운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음은 수십 년을 이어오는 그 분의 지극 정성스런 마음덕분 일 것이다.
간밤 꿈에서의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하지만 난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음이 생생하다. 행여 그분께도 현몽하셨을까. 이른 아침 비 내리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한참을 아버지의 생각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 가시던 날처럼 초록의 나무잎들이 오늘은 비를 맞아 더욱 초록빛이다. 빗물에 초록물이 흘러내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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