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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물소리~~^ 2017. 11. 21. 13:47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지혜를 보여준

일지암, 연못, 누마루의 배치

 

 

 

신문의 한 칼럼에 눈이 쏠렸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와 일지암 이야기였다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의 우정 나누던 곳으로 일찍이 두륜산에 다녀오면서 들렸던 일지암의 이야기이었기에 관심이 배가 되었다. 4년 전 그날의 글을 인용하면서 나로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니 몰랐던 일지암의 근본인 불가근불가원의 지혜를 새롭게 새겨보고 싶었다.

 

일지암의 원래 구조는 초당과 누마루 달린 기와집 두 채가 전부였다.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찻집과 운치 있는 살림집인 기와집의 만남이다. 두 집 사이에는 물에 비친 달을 즐기기 위해 작은 연못을 팠다. 얇고 널따란 구들장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초석 위에 굵지 않은 기둥 4개가 받치고 있는 밋밋한 누마루집이 소박한 초당과 더불어 대비감을 연출했다.

 

두 건물은 서로 지척에 있지만 물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 듯이 나누었다. 그야말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의 긴장감이 오랜 세월 권태로움 없이 서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된 것 아닐까. 그야말로 건축적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 셈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일지암을 바라보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혜를 새삼 곱씹었다.

(출처 : 조선일보 칼럼)

 

 

 

 - 4년 전의 글 -

 

 

▲ 茶향 가득한 일지암 

 

 

   일지암 가는 길을 택했다. 두륜산 산행코스 중 정상까지 올라 되돌아 내려오는 길 중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였다. 또한 일지암을 경유하는 단 하나의 코스이기도 했다. 언제 적부터 일지암에 꼭 한 번 와봐야겠다고 벼르기만 했을 뿐,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두륜산 산행을 계획하고 나니 마음 안에는 일지암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가을도 막바지로 치닫고 단풍들도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서는 그냥 바다로 빠져 나가기 싫은 듯, 이곳 땅 끝 해남에서 주춤하며 마지막 정열을 태우고 있다. 참으로 곱다. 단풍든 나무와 하늘을 쳐다보며 쉬엄쉬엄 걸었다. 일지암까지의 통행을 위해 차로를 형성해 놓기는 했어도 급경사였다. 한 번도 꺾어짐이 없는 오르막길이다.

 

간밤에 살짝 내린 비로 산길은 촉촉했다. 낮부터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바람이 제법 분다. 가녀린 나뭇잎들은 아직은 나무와 이별키 싫은지 몸부림친다. 산 정상의 우뚝 솟은 바위가 힘이 세 보인다. 푸른 하늘에서의 구름도 바람을 타는지 금세, 금세 나뭇가지를 헤집고 다닌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저 산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일지암의 주인이였던 초의선사(草衣)를…

선사는 열다섯 나이에 출가하여 열아홉에 깨달았다고 한다. 명성이 높아지자 이곳 두륜산 기슭에 일지암을 짓고 40년을 살았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일지암을 찾아 오르고 있다. 아래 이정표로부터 300m를 오르니 지금까지의 등산로를 벗어나 또 다시 오름길에 일지암이 있다는 안내판을 다시 만났다. 나는 또다시 올랐다. 숨이 찼지만 문득 저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초의선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나를 안내하는 듯싶으니 걸음을 멈출 수 없다.

 

동백나무인가? 두 그루가 얌전히 일지암을 지키고 있었다. 참으로 고요하다. 등산길 곁에 있었지만 조금 벗어나서일까? 급경사를 오르기에 힘이 들어서인지 등산객들은 두륜산 정상을 향해 곧장 올라가고 말았다. 오직 나 혼자만이 일지암을 찾았을 뿐이니 그 고요함을 방해하는 듯싶은 내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숨 가쁘게 올라와서 너른 평지를 만난 안도감에 젖어드니 마치 초의선사가 반겨주는 듯싶은 환상에 젖는다.

 

전체적으로 초가지붕을 얹은 일지암과 주변에 잘 가꾼 법당들이 알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법당보다도 곧장 다가간 일지암 앞에는 꽃이 핀 차나무가 제법 자라고 있었다. 요즈음을 살아가는 사람들 茶 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 우리나라의 茶의 효시를 이룬 초의선사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초의선사는 ‘동다송’ 과 ‘다신전’ 이라는 차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물론 스님으로서 깨달음의 경지를 얻기 위한 수행의 하나였으며 그 행위를 “팔덕을 겸비한 진수를 얻어 진다(眞多)와 어울려 體와 神을 규명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고 나면 大道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용) 라고 설명했다.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는 일이 차 마시는 일이라니… 물론 마음을 씻는 일이겠지.  문득 부드러운 마음의 그윽한 향이 내 몸을 휩싼다.

 

일지암을 둘러보니 참 정겹다. 싸리문이 있고 작은 연못가에는 맨몸의 배롱나무가 서 있다. 집 옆으로 서 너 개의 돌확이 있어 약수를 받아내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 물로 차를 다려 마셨을까. 이 높고 깊은 산중의 암자에서 어떻게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40년이나 지낼 수 있었을까.

 

초의선사는 茶로서 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나 보다. 강진에 유배 왔던 정약용의 제자가 되어 시를 익혔다. 스승인 정약용은 초의선사에게 차를 구하는 ‘걸명시’ 까지 지어 보냈다고 하지 않던가. 또한 제주로 유배 간 추사 김정희와의 교분은 역사에 길이 회자되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던가. 그 모두의 매개체는 단연 차였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차를 독촉하며 보낸 편지는 지금도 가끔 회자되고 있다.

 

일지암의 고요함 속에 그분들의 우정 어린 마음과 웃음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여정인데 그 시절에 어떻게 여기를 오갔는지 참으로 경이롭다. 싸리담장 사이로 피어난 쑥부쟁이가 더 없이 예쁘다. 나도 이렇게 외진 높은 곳에서 자라고 있지만 초의선사님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꽃사진을 찍노라니 누군가가 내 행위를 엿보고 있는 듯싶다. 옆 누각에 다기가 언뜻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차 대신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나이지만 어쩌면 마시는 시간의 짧은 순간에 느끼는 마음의 평화로움은 누구나 일치하는 순간이 아닐까?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의 일체감을 느끼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후손에게 참 좋은 덕을 전해주신 초의선사님을 만나고 나니 참으로 마음이 뿌듯하다.

 

 

 

 

일지암 입구

 

 

 

일지암 현판

 

 

 

차나무

 

 

 

약수

 

 

 

굴뚝과 차나무

 

 

 

싸리문

 

 

 

울타리

 

 

 

차나무로 가려진 일지암

 

 

 

▲ 일지암 - 연못 - 누마루

 

 

 

울타리 사이로

 

 

일지암을 나와 산을 오르다 만난 바위

멀리서 보며 삿갓 쓴 초의선사를 생각했는데...

 

 

▲ 대흥사 경내에 세워진 초의선사 (1786~1866)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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