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의 내 위치는 막내며느리이다.
하니 윗분들은 모두 연세가 있으신 터~~
그나마 젊은? 내가 몸을 동동거리며 준비해야하고 정리해야하는 위치다.
추석 전날은 물론, 추석날 이른 아침부터 며느리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차례를 지내고 말끔히 정리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와 잠시 쉬고 친정으로 향했다.
오늘의 친정나들이는 집이 아닌 고창의 오토캠핑리조트다.
추석 차례를 마치면
친정식구 모두가 캠핑장의 숙소로 모여 하룻밤을 지내며 즐겁게 보내자는,
이는 진즉부터 울 언니의 계획으로 진행되어온 행사?로
남동생의 준비가 어우러져 있던 거사일이다.
특별한 장소로 친정을 찾아가는 길목은 가을로 가득하였다.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위의 차들이 느린 행보를 하고 있음에
우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를 타고 달리노라니 지척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가 가득한 논들의 가지런함이 풍요롭고
길가에서 가을하늘 바람에, 혹은 오가는 차량들이 스쳐 지나며 보내는 바람결에도
살랑살랑 제 몸을 흔들며 인사하는 코스모스의 무리들이 진정 가을스럽다.
며칠 동안의 고단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언니네 식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조카들과 조카며느리, 그리고 조카손주들이 와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다른 식구들이 도착하려면 여유가 있는 듯싶어
남편과 작은아들과 함께 선운사로 향했다.
2년 전 이맘 때 쯤, 무균실에 들어가기 전 이곳을 다녀갔는데
아들이 곳곳을 기억하는 마음이 새삼스럽다. 아주 많이 찾아왔던 곳~~
즐거움과 아쉬움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잠깐 둘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캠핑장에 돌아오니 남동생네 식구들이 도착하였고
울 큰 아이와 조카들이 일을 분담해 우왕좌왕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저녁 먹기 위한 준비를 캠핑장 야외에서 하고 있었는데
모두 서툰 행동들을 무마하려는 웃음 섞인 이야기소리들로 왁자지껄하다.
늦게 도착한 식구들과 나누는 인사들에 마음이 살짝 시큰해지기도 한다.
울 어머니는 손주들을 하나하나 챙기시며
누구는 왜 안 오느냐, 벌써 왔느냐하시며 흐뭇해하시니
오늘 우리 어머니는 어머니도 되시고, 시어머니도 되시고
장모님도 되시고, 할머니도 되시고, 외할머니도 되셨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며느리도, 올케도 되었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딸이 되는가 하면
언니도, 고모도, 이모도, 시누이도, 이모할머니도 되고 있으니
참으로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벅차니 절대 허투루 살 일이 아니다.
멋지게, 뜻있게 살기위해 더욱 건강해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남편 역시 이런 가족모임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교육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며 형부와 함께 일찍부터 자리 잡고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편하다.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보한 보름달도 우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을까
달무리 진 모습으로 슬그머니 나와 우리의 자리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소원도 필요 없는 마음들의 무심함을
달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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