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정사 대웅전
농암종택에 이별을 고하고 돌아 나오는 길, 다시 내비에게 봉정사 안내를 부탁했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 와서 하루에 많은 곳을 둘러본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와 다름없지만 굳이 봉정사를 둘러보고자 함은 그곳의 극락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하여서다. 나는 분명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도착, 일주문 지나서 안주차장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하다고 매표소에서 미리 알려주니 아마도 우리가 퍽 힘들어 보였을까? 아닌 게 아니라 돌아가는 길 자투리시간을 활용했으니 지쳐 있을 만도 하였다. 부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차량 진입이 허용되는 안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들어갔다. 원래 절집에 가려면 단순히 사찰만을 보기위한 것이기 보다는 일주문부터 걸으면서 속세의 때를 씻고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 씻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공간의 길을 나는 속세의 때를 가득 싣고 들어서고 말았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길 좌우의 쭉쭉 뻗은 나무들이 봉정사의 위엄을 알려주는 듯싶었다.
▲ 일주문 天燈山鳳停寺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째 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일주문이라고 유래되었지만
항상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수도하라는 의미로 일심(一心)을 뜻한다고 한다.
▲ 안주차장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우람한 소나무였다. 받침대로 나뭇가지를 지탱하고 있는 소나무는 줄기의 용틀임이 기이하여 보호받고 있는 나무인 것 같았다. 나무줄기의 기이함을 한참을 바라보노라니 사람 같기도, 짐승모습이기도 한 것 같고 정말 괴이하였다.
▲ 우람한 소나무를 지나자마자 우거진 잡풀에 치장을 한 듯싶은 가지런한 돌계단을 만난다.
문득 편안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보니 병산서원의 만대루 같은 누각이 보인다.
어쩜 정말 형태도 비슷한데 이름도 만세루란다.
▲ 돌계단을 올라서니 색다른 상사화가 피어있다.
붉노랑상사화도 아니고 거의 흰색에 가까운 상사화로
위도에서 자생하는 흰상사화가 여기에도? 하는 의아심을 가지게 하였다.
▲ 눈을 달리 돌릴 틈도 없이 만세루 누문과 맞닥트린다.
사찰의 누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지어 아래층은 이처럼 사찰에 이르는 통로의 역할을 하며,
낮은 곳을 지나며 자신을 낮추는 마음가짐을 지니는 곳이라고 한다.
▲ 기둥이 오랜된 건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 누문을 통과하여 만난 대웅전
국보 제311호
▲ 대웅전에는 보기 드물게 마루가 연결되어있었다.
▲ 대웅전 처마
▲ 대웅전에서 바라본 만세루
▲ 사찰의 누각은 대부분 이층으로 지어 아래층은 사찰에 이르는 통로의 역할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木魚), 범종(梵鐘), 법고(法鼓)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鼓樓)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고 하니
과연 봉정사의 만세루에는 목어와 법고가 걸려 있다.
또한 병산서원의 만대루가 강학장소를 겸하고 있듯
사찰의 만세루는 야외법당의 의미를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봉정사 만세루에는 '덕휘루(德輝樓)'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으니
원래 이 누문의 이름이 덕휘루였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만세루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 극락전의 내부는 기둥들의 배흘림 곡선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낱낱의 부재와 연등천장까지
남김없이 드러나는 간결한 미를 보여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 절집이 아닌 일반집 같은 창이 나로써는 특이하게 느껴졌다.
▲ 극락전 앞의 삼충석탑
▲ 극락전 화단에 핀 무릇
▲ 이 불상은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안동댐건설로 안정사가 폐사되면서
봉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
▲ 산신각
▲ 산신각앞의 거목
봉정사의 이름을 높여주는 것은 극락전의 오래됨이라고 한다
그 오래됨이 내가 배웠던 것을 궁금토록 했으니 그 이유를 조금 헤아려 본다.
1. 우리나라에서 창건연대를 확실히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1934년 해체 공사 때 1308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한 수덕사의 대웅전
2. 부석사 무량수전은 1916년에 해체 중수 때, 1376년에 중수한 자료를 발견했으나
창건은 이보다 1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니 창건연대는 1276년 경
3. 봉정사의 극락전은 1972년에 중수를 위해 해체 했을 당시 발견한 자료에는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을 발견. 이는 무량수전보다 13년을 앞서 중수한 것이니
창건연대도 13년 앞선 1263년 경으로 앞서 판단하는 것이라 한다.
더욱이 극락전의 건축양식이 고구려식 건축으로 인식되기에 창건연대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모든 발견된 자료에는 중수의 연대만 있을 뿐,
그에 여러 복합 요인을 결합해 창건연대는 추측으로 나온 것이다.
어찌 되었던 우리나라의 절집이 지닌 의미와 역사, 그리고 위치 등은
아무리 무심해려도 무심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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