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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설 명절을 보내고

물소리~~^ 2016. 2. 10. 21:46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 조심스레 뒷산을 올랐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보낸 명절인데도 어쩐지 더욱 값지게 보낸 느낌이다. 아마도 기대하지 않았던 내 몫을 해 낼 수 있었음이 아닐까. 잔설이 남아 있는 곳을 비켜가며 오르막을 마악 차고 오르다 1봉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참으로 맑고 푸르다.

 

어쩜 저리도 맑을까. 맑은 하늘에 빈 나뭇가지들이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천연덕스럽다고 여기노라니 하늘이 금방 뾰루퉁하다. 자신이 빈 나뭇가지들을 품어 주었단다. 그렇다 나무와 하늘은 서로가 자신이 지닌 역량만큼으로 상대를 담아주는 그릇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들의 말없는 역할을 나도 배우고 싶다

 

30년을 넘게 변함없는 일정량의 몸무게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음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노력도 했었다. 시간상 운동하는 시간을 따로 할애하지는 못했지만, 내 시간을 쪼개어 새벽 산행을 꾸준히 했고, 주말이면 큰 산을 찾아 나서는 일을 퍽 좋아했기에 건강만큼은 자신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작년 한 해를 뜻하지 않은 병으로, 그것도 아주 커다란 병으로 고생을 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길을 잡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치레를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내 몸의 상태에 나의 정신이 얽매어 있음을 깨닫고 퍽 실망스러운 삶의 여정으로 생을 마칠 것 같은 불안함도 스며들었다.

 

그동안 나는 육체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으로 건전한 삶을 추구한다는 사치스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육체의 건강 없이 정신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는 없는 법, 육체는 어쩌면 정신을 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어떤 모양의 육체적 그릇으로 내 정신을 건재 시킬 수 있을까.

 

설 명절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모두 내려왔다. 명절 전 날, 나는 큰집에 가서 차례음식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기에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했지만, 모처럼 집에 온 아이들은 저희들 각자 친구들 만나느라 집에 붙어 있지를 안했다. 그만큼 내가 조금이나마 병으로부터 자유스런 몸 상태가 되었기에 아이들도 마음을 놓은 것이리라. 그런데 큰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왔는데 한밤중부터 복통을 호소하더니 결국 구토를 하고 난리가 났다.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다행히 두어 번의 구토 후, 조금 잠잠해졌지만 결국 설날아침부터 아무 것도 못 먹고 말았다. 하루 쯤 호되게 아프고 나더니 어제는 이제 다 나았다며 뭐 맛있는 것 없느냐며 먹을 것을 청해 온다. 삽겹살이 먹고 싶단다

 

연휴라서 고기 구하기 어려웠지만 겨우 마트에서 사 가지고와 맛있게 양념하여 구워 주었더니 잘 먹는다. 고기음식이라 은근 걱정 했는데 잘 먹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 순간 드는 생각~~ 내가 이만큼이라도 건강을 찾았기에 아들이 먹고 싶다는 것을 챙겨 주었지 싶다. 빌빌거리고 아픈 치레만 하고 있었다면 어찌 아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나마 내 몫을 할 수 있었음이 참으로 감사했다.

 

그렇다. 내 육신은 어쩌면 아이들을 담는 그릇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고 예쁜 그릇은 아니다. 투박한 뚝배기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다면 나라는 그릇은 용도에 맞게 내 역할을 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완전한 건강의 몸은 아니었지만 쓰임 없는 그릇의 육체는 아니었다고 혼자 행복해 했었나보다.

 

내 육체의 그릇은 언젠가는 낡고 쓸모없게 될 것이다. 점점 쓸모없어짐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우쳐주기 위해 아픔이 찾아왔을까. 그렇다면 아픔 또한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정신적인 보람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끝을 위해 좀 더 값진 쓰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 노력으로 만든 행복을 내 소박한 그릇에 채우며 남은 생을 살아야겠다.

 

 

 

 

 

▲ 아직도 눈에 덮힌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