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중한 병으로 입원한지 10여 일 되던 지난 토요일, 서울의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며칠 전 올라가는 차표를 예매할 당시만 해도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에 면회시간인 12시에 맞추어 가려고 KTX를 예매했다. 이번에 개통한 호남고속철도였다. 다행히 지난 목요일 오후에 조카가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한결 여유로운 마음이다.
열차는 쾌적했다. 익산역에서 승차하고 광명역에서 단 한 번 정차한 후 종착역인 용산에 1시간 10여 분만에 도착했으니 빠르긴 빠르다. 서울 시내에 들어선 본지가 얼마만인가. 가끔 서울행을 하긴 했어도 한 중심가를 거치지 않는 일정이었기에 새삼스럽다.
기차가 영등포역을 지나면서부터 내 눈은 휘둥그레진다. 내가 서울에 거주할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빽빽이 들어선 빌딩 들! 어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저렇게 들어섰을까. 저 건물들을 받치고 있는 땅들이 참 불쌍해 보였다. 아니 거룩해 보였으니 새삼 내 나라 내 땅의 소중함이 다가온다. 서울에 도착하여 이제는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이상을 갈아타야하는 노선이다.
1회용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카드보증금 500원을 환불받는 이 모든 과정은 모두 자동판매기가 하고 있었다. 역무원을 만날 수 없었다. 지하철 역시 그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느라 얼마나 고단할까! 각 정거장마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만감이 교체한다. 시민의식이 많이 발달하여 모두 규칙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었지만 여기서 무엇 하나 잘못되어 시스템이 어긋난다면? 하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겠다.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그만큼 요즈음 우리 사회에 사건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지하철에 탄 사람들 모두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구두 신은 사람을 일부러 헤아려 보려 했지만 1시간 여 동안 찾을 수 없었다. 촌에서 올라온 나만이 구두를 신고 있었으니 나는 어느새 촌뜨기 차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웃음이 나온다.
병원에 도착했다. 큰 병원답게 건물의 위용부터 대단하다. 건물 밖 벚나무는 화사한 꽃을 내밀고 있었으니 이 화사함이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병원 내는 한 시가지를 이룬 듯싶으니 방향감각을 잃지 않아야 했다. 토요일 이어서일까? 로비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링거를 꽂은 채, 환자복 차림으로, 또는 휠체어를 끌고 나와 즐기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라도 해 주어야 환자들의 마음이 밝아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조카의 병실을 찾으니~~ 아, 내 생각하기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여태 중환자실에 있었기에 온갖 의료기구들을 몸에 달고 있음을 상상했는데 머리 부분만 붕대로 감고 있는 깔끔한 모습이다. 우리 보고 빙긋 웃는 모습에 한없는 정이 쏠린다. 피붙이란 이런 것일까. 부디 내 동생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감 없는 그런 병원생활이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다.
동생과 병원 내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하고 헤어졌다. 어차피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은 아니니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라 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병원 밖으로 나오니 옛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 내가 즐겨 걸었던 그곳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30년 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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