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서재에 살다

물소리~~^ 2015. 1. 23. 16:52

 

 

 

 

 

 

 

  서재라 함은 어딘가 모르게 학식과 인품이 높은 학자의 책이 많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그냥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가 읽고 싶은 책도 가득한 곳 일거라는 믿음이 먼저 차오르는 공간이다. 이런 서재가 지금이 아닌 200여 년 전의 서재라면 어떤 모습이고 어떤 분위기일까? 끝없는 궁금함이 일렁인다.

 

19C 학자들의 서재 24곳을 마음껏 드나들며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 박철상님의 ‘서재에 살다’ 라는 책을 읽었다. 일찍이 작가의 <세한도>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기에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하였다.

 

작가는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자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조선시대를 살다 간 학자나 문인들에 대한 깊고도 깊은 박식함을 아낌없이 펼쳐 주신 덕분에 나는 그저 앉아서 두루 두루 접할 수 있는 충만함에 아주 재미나게 읽은 책이다. 서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며 보여주는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인품이 참으로 경외스럽다.

 

조선 중기 후반, 정조임금시대를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임금의 밝은 눈과 마음이 있어 신분을 뛰어넘는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마음껏 자기 역량을 펼치며 나라의 부국을 위한 쇄신에 박차를 가한 시절이기도 하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실학자들, 홍대용, 박지원, 김정희, 정약용 등의 서재 외에 처음 대하는 유금, 조수삼, 남공철 등의 서재이야기는 흥미진진하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서재를 갖고 그에 걸 맞는 이름을 짓고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서재의 현판이 걸리기까지의 사연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는 저절로 나를 서재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었다.

 

유금의 서재 기하실은 음악이 있는 과학자의 서재라 했다. 줄 없는 거문고를 옆에 두고 마치 연주하는 것처럼 아취를 즐긴 유금, 그는 또한 동양 처음 아스트롤라베를 만든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유금은 문학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닌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지극한 자긍심을 지닌 지식인 이었다.

 

조수산의 서재 이이엄이라는 이름에서는 울컥함을 느꼈다. 엄(广)자속의 텅 빔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평생 가난하게 살며 초가집 한 채 구하기 어려운 사정을 빗대었지만 그가 이루고자했던 바람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지식인이 사회적 책임을 버릴 수는 없다 하였다. 서재 이이엄에 걸었던 조수삼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지식인이 추구해야 할 표상이 아니던가!!

 

다산(茶山) 정약용은 그의 서재에 여유당(與猶堂)이라 편액을 걸었다. 여유당은 어쩌면 유배생활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과 철학을 요약하는 의미였다. '여(與·코끼리)가 차디찬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유(猶·의심 많은 원숭이)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 라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라 하였다. 극한적인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몸과 마음가짐을 다잡으려 했던 다산의 고심한 마음 빛이었다.

 

24인 지식인의 서재를 어떻게 감히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 나름의 철학이 있고 아취가 있음을 그저 조용히 읽고 느껴볼 뿐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서재이름은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단초이자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서재주인의 생활 속 일화, 그와 연결된 인연들, 그들 각자 지녔던 호의 뜻을 풀어주며 서재의 이름이 되기까지의 세세한 설명은 궁금함을 넘어 호기심을 부추기며 읽는 속도를 끌어주고 있다.

 

시대적으로 불운을 안고 태어난 계급의 사람들, 서얼 출신과 중인계급의 재주꾼들은 북학의 열풍 속에 자신들의 마음을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하여 그 시대만큼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지식을 탐구했던 시대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요즈음이 아닌 200년을 훌쩍 건너가 19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듯, 그들이 지금을 살아간다면 그 옛날의 그분들이 분명 아닐 것이다. 한 시대를 등에 지고 태어나 살아가면서 그에 맞는 역할을 다 한다는 것, 이처럼 쫀득쫀득한 맛깔스러움으로 읽힐 수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 있다는 이치가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무엇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며 그 뜻을 이루고자 혼신을 다했던 우리 선조들~~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렇게 후딱 책을 통해 잠깐 엿본 것에 불과했지만 19세기 지식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서재를 접했다는 자랑 같은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팽이 식당  (0) 2015.02.10
재즈  (0) 2015.02.01
책방주인  (0) 2015.01.15
와일드  (0) 2014.12.12
이상한 책읽기  (0) 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