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의 부드러움에 마냥 노닐고 있는 멋진 소나무
한 책자에서 호남의 명산 23곳을 선정해 놓은 글을 읽었다. 그 중 한 번이라도 다녀온 곳을 헤아려 보니 13곳이었고, 10곳이 아직 미답지이였다. 우리나라도 참 넓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도 속하며, 호남 5대 명산중 하나인 추월산(秋月山)은 가을날의 보름달이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추월산은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농민 운동 때에는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산은 말없이 역사의 산 증인이 되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직 미답의 산이다.
주차장에 내려서니 깎아지른 듯싶은 거대한 암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방이라도 하늘에 닿을 듯싶다. 저곳 어디에 보리암이 있다는데…마음은 벌써부터 한달음에 달려가고 있다. 해발 731m인 추월산은 산 오르는 내내 바라보이는 담양호의 풍경이 뛰어나며, 추월산의 백미라 하는 보리암이 위치해 있는 산이다. 오늘 나는 저 산을 오르고자하는데 자욱해지는 안개는 점점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으니 심상치 않다. 일요일에 아무래도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온 나는 불청객일까. 오전 7시 30분부터 산길로 접어들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추월산
▲ 오늘 나의 등산 경로는 빨간 선을 따라서~~
▲ 산행기점
▲ 들어서자마자 만난 의병전적비
1908년 11월 25일 새벽, 추월산에 포진하고있는 의병 진지에
1백여 명의 왜진이 기습, 약 3시간여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의병 지휘관 이하 15명이 전사한 곳임을 알리는 비
▲ 처음 만난 갈림길
▲추월산보리암중창공덕비
▲ 공덕비 옆의 굴,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심한 안개로 흐릿한 사진이어서 빛 보정을 했더니....
▲ 짙은 안개
시야확보가 안 되어 풍경을 바라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만한 분위기가 또 있을까 생각하니,
이는 나한테만 주어지는 특별함이었다.
이런 적막함을 내 언제 누려볼까. 마음껏 즐겨야겠다.
▲ 계단은 나로 하여금 경사면를 직각으로 디딜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길이다.
▲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안내해 놓았는데
▲ 나는 온통 안개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 밧줄을 잡고 돌길을 걷노라니
▲ 저 높은 계단 끝에 멋진 소나무가 마중을 나와 있다.
▲ 다리 긴 거미가 꽃 옆에 앉아 있다.
나한테 달려들려는지 준비자세다!!
▲ 충장군김덕령장군배정 / 경부인흥양이씨순절비
아!! 내 오늘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보고 싶었던 순절비 !!
흥양이씨는 임진왜란 의병장인 김덕령장군의 부인이다.
김덕령장군은 25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고경명 의병에 가담하였다. 전라도에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치기위해 전주에 이르렀다가 어머니를 공양하라는 형의 권유에 따라 귀향했다. 구 후 형은 고경명장군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이듬해 8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김덕령은 상중임에도 1593년 11월 다시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의병을 충용군, 김덕령을 충장군이라 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는 모든 의병을 통합하여 충용군에 속하도록 지시하였으며 김덕령은 곽재우와 협력하여 수차례 적을 무찔렀으며, 1595년에는 일본군을 기습하여 격퇴시켰다 그랬음에도 무고로 인해 반란군 무리로 보고되어 체포 되었고, 그는 억울함을 풀지도 못하고 모진 고문 끝에 장독으로 옥사하였다. 부인 흥양 이씨는 이듬해 왜군에 쫓기게 되자 추월산 보리암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 한다.
그 후, 1661년에 억울함이 풀려 관직에 복직되었으며, 1788년 충장공이란 시호가 내렸고, 1947년부터 광주의 중심지를 충장로라 부르는 데에는 김덕령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기인되었다고 한다. 의롭게 살아감은 제 이름을 만고에 전 할 수 있고, 그에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임을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 흥양이씨와 함께 순절한 이씨의 남동생 부인들 비 (세 여인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
▲ 절벽도 온통 안개 뿐이었다.
▲ 보리암 (菩提庵)
소박한 민초들의 집 대문처럼 아담하였다
提를 '제' 로 읽어야 하는데???? '리' 로 읽고 있음이 자꾸만 의아했다.
그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뒤져보다 겨우 찾았다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고 한다.
보리수 나무도 "菩提樹" 라 함을 이제 알았다.
▲ 보리암은 고려대 보조국사 지눌이 절터를 잡기 위해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깎은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날아와 앉은 곳이 추월산 암벽 위였으며, 그곳에 지은 절이 보리암이라는 전설이 있다. 나머지 새 두 마리는 금오도의 송광사터라 전해오는 곳에 날아들었고,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터 라고 한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보리암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까. 여러 차례 복원한 작은 암자였다.
▲ 보리암에 필요한 부식 등을 운반하는 곤도라 라한다.
▲ 안개 속 나무가 풍기는 분위기는 그대로 경전이다.
▲ 망망운해
▲ 다시 길 나서는 나그네를 배웅해주는 조록싸리
▲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하면 딱이다!!
▲ 보리암지나 보리암 정상에 이르다
▲ 안개 속 노오란 바위채송화의 선명함이 넘 예쁘다
▲ 등산 중 야간 조난자를 위한 시설이다
국립공원에서도 볼 수 없었던 표지판으로
이는 빨간버튼을 누르면 점멸이 작동하면서 위치를 표시해주고
청색버튼을 누르면 경보음이 울리면서 주변사람에게 도움요청과 동물을 퇴치할 수 있단다.
▲ 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 바위비탈길의 까치수영이 무서운지
제 꼬리를 다 펴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 귀여운 것들~~
▲ 노루오줌
▲ 닭의장풀
▲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나란히~~
▲ 털중나리가 빛을 밝혀주고 있다.
▲ 미역줄나무
▲ 정상에서의 조망
이제 내려가야한다며 아쉬움을 보낸다.
▲ 일월비비추
오전 10시, 세상에~~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해가 들기 시작한다
▲ 파리풀
▲ 산행 날머리, 많은 팬션들이 있었다.
아마도 계곡을 찾는 여행객들이 이용 하는 곳인가 보다
▲ 주차장에 내려서 바라본 담양호
물이 많이 말라 있었다.
산의 계곡에서도 물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가뭄이 심각하다.
▲ 다시 바라본 추월산
이제 해가 드나 보다. 다시 오를까?
▲ 담양호를 가로 질러 건너게 하는 멋진 다리
▲ 안개가 내 몸에 닿으면서 땀을 비오듯 흘린 3시간 10분~~
아주 후줄근한 모습으로 추월산과 함께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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