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주사 ⇒ 세심정 ⇒ 관음암 >
▲ 6시 40분경에 국립공원 속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조용헌님의 책을 읽다가 주유천하라는 제목의 글을 만났다. 필자는 주유천하의 첫 단계는 명산유람이라 하였다. 동양철학에도, 사주명리학에도 두루 박학다식하신 필자가 꼽는 남한의 10대 명산은 지리산, 설악산, 계룡산, 한라산, 오대산, 가야산, 월출산, 속리산, 북한산, 태백산이라 하였다.
이에 내가 다녀온 산을 헤아려 보니 속리산만 빼고 다 다녀왔음에 기특하기도 하면서 속리산을 가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더 바빠지기 전에 일요일에 얼른 다녀오자고 한다. 내심 좋아라하며 냉큼 그러자 했는데, 남편은 산에는 오르지 않고 밑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나 혼자 올랐다 내려오라 한다. 2주 전 설악산등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나 보다.
6월 첫날, 일요일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7시에 법주사에 도착했다. 법주사를 40여 분 둘러본 후, 곧바로 문장대(1,054m) 표시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전 7시 40분.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등산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한 두 쌍이 걷고 있었다. 울창한 숲을 사이에 두고 나있는 포장된 길은 숲속길이 아닌 대로(大路) 같았다. 1시간여를 따라 걷노라니 높은 산을 오르기 전 충분히 워밍업이 되는 것 같았다. 세심정까지는 계속 계곡을 끼고 걷는다. 물이 맑고 계곡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의 우람함에 자꾸만 눈이 커진다.
▲ 속리산 입구에서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정이품 소나무! 600여년의 세월을 살아온 탓인지 한쪽의 가지가 잘려 나갔음에 허전해 지는 마음이다. 이 소나무는 세조가 가마를 타고 지나는데 가마 연이 나무에 걸려 지날 수 없다하자 가지를 들여 올려 가마가 지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며 정이품이라는 벼슬까지 내려주었다는데 세월이 참 무심하다
▲ 잘 생긴 정이품 소나무의 모습을 안내판이 말해 주고 있다.
▲ 법주사를 지난 후, 문장대로 향하는 길이 단정하다.
▲ 처음 만나는 휴게소
▲ 길가에 서있는 우람한 바위
▲ 계곡을 이루는 집채만한 바위가 복어를 닮았다.
▲ 막 떠오르는 햇살에 물빛이 황금빛이다.
한참을 걸으니 목욕소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물이 적어서일까? 임금님이 목욕할만한 장소가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위로 오르면 더 넓고 물 맑은 장소가 나오던데 왜 거기까지 오르지 못했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 목욕소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곳이다.
▲ 세심정 삼거리다.
▲ 원래 파란색 표시길로 오르기로 한 계획이었는데
나는 빨간 표시길을 택해 걸었다.
▲ 두번째 만난 세심정 휴게소
▲ 세심정 길가에 걸려있는 최치원의 시
세심정이 이르니 휴게소가 있다. 이곳 속리산에서 다른 산과 다른 점을 발견했는데 요소요소에 휴게소가 있는 점이다. 국립공원 안에 휴게소? 의아심이 생겼지만 딱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두 민간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 세심정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원래는 왼쪽 길을 택하여 문장대에 오르기로 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나는 오른쪽 길을 택해서 걸었다. 다소 난이도가 높은 길이지만 길 안내도에 따르면 이 길이 역사적인 흔적을 찾아 볼 기회가 많고 풍광이 훨씬 좋은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세심정 갈림길에는 세심정 간판과 함께 한 시 한수가 적혀 있었다.
(道不遠人 人道遠)
도는 사람에 멀리 있지 않은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山非離俗 俗離山)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아니 하였는데 세속은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시대의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는 시이다. 이 속리산의 깊은 풍경을 널리 홍보하는 것처럼 읽히니 내가 오늘 이곳에 온 보람이 있었다. 천년이 훨씬 전, 신라시대의 학자는 이곳 속리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속 깊은 시를 지었을까.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돌계단이 계속 이어지며 점점 깊은 숲으로 나를 이끈다. 한데 이쪽 길을 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만이다. 오늘 일요일이어서 산행하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내가 너무 일찍 올랐거나 아니면 모두들 좀 더 쉬운 길을 택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젓한 산길을 산새와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벗하며 걷는 이 호젓함을 그 누가 알리요.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마저 상쾌하다. 잘 정비된 이정표가 곳곳에 있으니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문득 최치원의 시에 나를 대입해 보고 싶었다. 산은 세속의 나를 품어주고 있노라고.
▲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산행의 길,
상쾌한 느낌을 안겨주며 반겨준다.
▲ 산길에서 만난 돌 절구통과 설명문
▲ 태실(빌려온 사진임)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으로 이곳에는 순조의 태가 안치되어 있다. 계곡을 건너 0.3km 지점에 있다는 표시판을 보았지만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마음만 앞세웠다. 태실비 사진은 빌려온 사진이다.
▲ 이 예쁜 길을 놓아두고 관음암쪽으로 걸어야 한다.
▲ 햇살마저 비집고 틀어올 틈 없이 우거진 녹음~~
▲ 이곳은 휴게소가 아닌 비로산장 이라는데...
아마도 며칠씩 묵어가는 길손들이 머무르는 곳인가 보다
▲ 바위 한 편에 격자 무늬를 그려 넣은 듯 ..
바라보는 순간 웬일인지 조금 소름이 돋았다.
▲ 이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이정표는 참으로 반가운 존재다.
경업대를 향하여~~
▲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등산길을 막고 있다.
▲ 세상에!!! 이 커다란 바위를 나무 막대기로 바쳐 놓다니…
저 바위의 버티고 있는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마음들일 것이다
바위에 대한 연민, 아니면 저렇게 함으로써
모른 척 지나치며 느껴야하는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보려는 마음일까.
두리번거리다 긴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하여
그대로 키에 맞추어 세워 놓으며 바위의 힘을 덜어 주었다 (빨간 표시줄이 내 것)
▲ 오늘 세번째 만나는 휴게소
▲ 산골무꽃
바위가 많은 산이어서일까? 참 꽃이 귀한 산이다.
갑자기 만난 꽃이 어찌나 반갑던지...
▲ 연이어지는 돌계단과 철계단,
계단을 만나면 힘들겠다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이들이 있어 더 쉽고 편한 산길이 아닐까 여겨진다.
세심정에서부터 한 시간쯤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계속 오르다 경업대 0.1m, 관음암 0.2m라고 알리는 표지판을 만났다. 관음암은 앞으로 진행하는 길로부터 조금 벗어나는 길, 가볼까 말까를 몇 번 망설이다. 발길을 잡았다. 어쩜 관음암에 이르는 문조차 돌문으로 겨우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높고 좁은 큰 바위사이의 길이었다. 임경업장군이 칼로 내리쳐 반으로 갈랐다는 문이란다. 호기심은 더욱 발동하여 틈새로 들어서니 오히려 밖에서 바라보는 좁은 느낌보다도 더 넉넉함으로 걸을 수 있었다.
돌문을 빠져 나오니 작은 암굴이 있고 촛불이 켜 있었다. 이곳이 법당인가? 설마? 하는 마음은 더욱 조심스런 몸가짐을 안겨준다. 살며시 들여다보니 아하 샘물이었다. 이 또한 임경업장군이 마셨다는 장군샘물이다. 바가지 두 개가 놓여 있기에 깊은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셔보니 시원하다. 맛이 정말 좋았다. 법당은 이곳에서 저 이쁜 계단을 타고 또 올라오라 한다. 이쯤에서 내려가려고 뒤돌아섰다가 다시 또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보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먼 산의 풍경이 확 잡혀온다. 그런데도 암자는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 바라보니 스님 한 분이 먼 산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를 바라보더니 어서오세요 하며 반기는가 싶었는데 여전히 그대로 서 계신다. 무언가를 방해한 듯싶으니 내 행동이 어색하다. 암자는 그저 조립식으로 세운 작은 건물이었지만 그 자리만큼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좋은 명당자리 같았다. 그냥 말없이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나왔다. 샘에서 빈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나오니 그냥 발걸음이 가볍다. 조용한 암자를 지나치지 않았다는 그런? 마음에서다. 오늘 남은 일정을 장군이 잘 보살펴 주시겠지... 이곳 속리산은 암자가 제법 있는데 모두 역사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으나 다 찾아보지 못했다. 이 핑계로 언젠가 다시 한 번 올 수 있는 빌미를 만들 수 있을까.
▲ 호기심따라 관음암 가는 길로 향했다.
▲ 관음암 입구의 돌문!
이렇게 멋진 문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임경업장군이 칼로 내리쳐 바위를 갈라만든 문이라는데..
암벽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의 글씨도 신비롭다.
▲ 깊고 좁은길이었지만 의외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 임경업장군이 마셨다는 장군샘
물맛이 정말 좋았다.
참으로 좋은 풍경의 위치였고 여기저기 아담함과 부도탑의 이야기 등이 있는 암자인데 찰칵찰칵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그 무엇에 압도되어 서둘러 내려와 경업대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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