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嶽山 新興寺 由來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홈피인용-
▲ 일주문
▲ 일주문을 통과하여 바라본 일주문
▲ 탐방지원센터 부근의 공원지역을 잘 가꾸어 놓았다
▲ 반달곰 표시석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 측면을 촬영함
▲ 통일대불
1987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점안대법회.
높이가 14.6m 108톤의 청동이 소요된 아주 큰 청동좌상으로
실향민의 슬픔과 분단의 아픔이 배어있는 곳에 민족염원인 통일을 이루고자 만들었으며
좌대에는 16나한상이 새겨짐
▲ 통일대불을 지나 신흥사 가는 길 - 세심교 -
▲ 신흥사 돌담
▲ 신흥사 사천왕문 앞 풍경
▲ 사천왕문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하는 뜻으로 지은 건물
1811년에 창건, 화재로 소실 1972년에 중건
▲ 경내의 풍경
범종 누각과 멀리 펼쳐진 산세가 참으로 조화로웠다.
▲ 보제루
극락보전 앞에 있는 장방형(직 사각형) 의 큰 누각이다.
장대석으로 쌓은 2단의 축대 위에 정면 7칸(22.4m), 측면 2칸(8.5m)의
누마루식 홑처마 맛배 지붕이다. 영조 46년(1770년)에 세워졌으며
1985.9.13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네 벽에 시판(詩板)과 추사(秋史)의 친필과 그 외 경판 등
보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볼 수 없음에 크게 아쉬웠다.
▲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설악산의 위용
▲ 추녀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설악산
제 모습을 알맞게 변화시키는 멋진 설악산 배경이다.
▲ 극락보전
앞의 석탑으로 정면 찍기가 어려웠다.
▲ 살짝 비켜 바라본 극락보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
▲ 극락보전오르는 석조계단
석조계단은 하나의 돌로 된 층계인데 1977년 보수 때 계단을 3조로 개조하였다.
계단 하단 양쪽에 용두를 조각하였고, 측면에 귀면상을 조각하였다.
▲ 사분합문의 꽃살문양과 협칸의 빗살문양이 돋보인다.
▲ 극락보전앞의 석탑
▲ 부토탑 가는 길
▲ 부도전
▲ 부도전의 돌담
▲ 부도전에서 바라본 풍경
▲ 긴 스님들의 행렬
수행중 이신가....
▲ 신흥사를 둘러보고 내려와 찻집에 들렀는데
▲ 무료로 건네주는 차 한잔에
오늘의 긴 시름을 씻어보았다.
2014. 0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