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초임 학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있는 자신의 소지품 중
작은 박스 안에 있는 통장을 찾아달라고 한다.
아이가 말한 박스를 찾아 열어보니 과연 통장이 있어 보내주고 나니
가지런히 정돈된 소지품의 내용물이 궁금해진다.
특히 여러 개의 편지봉투가, 봉해지지 않은 채 있었다.
무어지?
궁금함과 호기심에 열어본 나는 그만 흐뭇함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 한 학교의 학생들로부터 받은 편지였다.
정말 그랬구나!
아이가 걸어온 지난날이 새삼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어렵게 임용에 합격하였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 해 발령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뉴스를 접하고
내색 못한 답답함을 지녀온 터였다.
동안 시험에 합격하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이 이제
발령을 초조하게 기다리나? 하는 내 마음을 욕심이라며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간절함을 다독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갑작스레 발령을 받았고
월요일부터 근무라는 말에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심 기쁜 마음에 아이가 근무할 학교도 둘러보았다.
간밤엔 아버지(아이의 외할아버지)께서 현몽하시더니
출근 시간에 쫓긴 나에게 절대 늦지 말라고 당부 하신다…
교직에 계시다 정년퇴임하시고 소천 하셨음에
아마도 외손자의 앞날에 대한 당부이신 것만 같으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는 곧잘 우리 아버님과
아버님이 돌아가셨음에도
아직도 기일이면 찾아오시는 아버님의 제자 분을 생각하며
다산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야기를 연계시켜 생각하곤 했다.
진정을 다한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잊지 못하는
사제 간의 정리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인연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가 교직에 들어서고 보니
정약용과 제자들과의 전해오는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났지만
강진에서 배움을 받았던 제자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스승님을 찾아 인사를 하곤 했단다.
찾아온 제자들을 만난 스승(정약용)은
꿈에도 잊지 못할 다산초당의 근황부터 궁금해 하였다 한다.
초당의 지붕을 새로 이었느냐,
홍도화는 잘 자라느냐, 연못 속 잉어 두 마리는 많이 컸느냐 며
다산초당의 풍경 하나하나를 떠올리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비록 유배지였지만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깊은 배움과 인품을 보여주었고
또한 자신 최대의 학문을 쌓았던 곳이기에 잊을 수 없었음이라고
감히 말한다면 후손으로서 경솔함일까?
우리 아이에게 바란다.
이제 처음 학교교단에 서서 자칫 긴장되고 두려움도 있겠지만
교생실습 때 받았던 어린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의 훌륭하신 선조님, 또한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스로에게 깊은 상징을 남길 수 있는 초임지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 교생실습 때 아이들로부터 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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