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토요일, 괜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날이다. 마침 저녁식사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은 괜한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이끌어 준다. 집에 돌아와 연아의 쇼트경기를 보았다.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내 심장이 마구 두근대는 것을 겨우 참았는데 후련하게 경기를 마치니 기분이 좋아진다.
느긋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호수변을 따라 걷고 싶어 차림을 하고 나왔다. 한 겨울의 6시 넘은 초저녁은 어두웠다. 나트륨 가로등의 불빛이 더욱 선명해지고 달리는 차들의 후미등 빨간 불빛이 유난히 빠르게 스친다. 길을 걸으며 무심코 치어다본 하늘의 달도 선명하다. 어쩜 저리도 고운 선을 짓고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1월은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같다. 지금 저 하늘의 달은 음력 초나흗날의 달, 초승달답게 9시면 지는 달이어서인지 서쪽에 치우친 달의 맵시가 참으로 날렵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보름달이건 이지러진 달이건 변함없는 빛을 발하고 있음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순하디 순한 정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저 달은 스스로 지닌 모습으로 지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감성과 무한한 상상력을 안겨주는 존재다. 가까이 할 수 없어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없는 신비스러움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달은 탓하지 않는다. 다만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하늘에 대어본다. 사진을 찍어 저 순간의 모습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언제 어디서고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망설임 없이 담아내고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달이 주는 신비함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어디 나 뿐일까.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상징성을 그림으로 사진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금처럼 사진기가 없던 까마득한 옛 시절의 화가들은 달을 그릴 때 붓으로 그리지 않았다 한다. 구름을 조금 짙게 채색하여 달 모양을 은근히 드러내는 식으로 그렸다. 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기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처럼 구름이 없는 날의 달은 어떻게 그렸을까. 어쩌면 그런 날들은 구름대신 마음 빛을 칠하며 달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달의 윤곽이 유난히 뚜렷함을 보노라니 하나의 대상을 놓고 자기 느낌을 그려내는 일을 내가 따라하고 싶다. 지금 저 달은 지구 그림자를 받지 않는 곳은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림자를 받는 곳은 빛이 없었다. 다만 희미하지만 가느다란 테가 달의 둥근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꼭 반지 같았다.
빛이 없는 곳이 빈 공간처럼 보이는 그곳에 손가락을 넣으면 쏙 들어갈 것이니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반지가 아닌가. 금반지, 다이아몬드반지가 아닌 달반지, 참 멋진 반지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시람 끼리 서로 같은 달을 바라보며 달반지를 나누며 무언가를 약속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승달반지를 나눌 때는 달이 점점 부풀어지듯 서로 좋음으로 채워나가고, 하현달반지를 나눌 때는 달이 점점 기울듯 서로 간에 오해나 나쁨을 덜어내며 함께하자는 약속의 의미가 될까.
일반적인 반지의 상징적 의미는 어쩌면 구속력이 더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구속력은 진정한 약속이 아니다. 반지는 속이 빈 둥근 만남을 약속하는 의식이라 말하고 싶다. 달반지처럼 빈곳을 함께 채우고, 또 함께 비워나가며 만남을 지속하며 둥글게 살아가자는 약속이라 말하고 싶다.
약속을 상징하는 의미의 반지는 참 많다. 커플링이 있고, 결혼식 때 나누는 반지가 있다. 또한 종교의식에서도 신과 나누는 반지가 있다. 이 모든 약속들에 값비싼 보석들로 치장할 일은 아니다. 달반지처럼 둥글게 앉아 빈 공간을 채우고 비워내며 살아가자는 만남의 약속이었으면 좋겠다. 한 해의 처음에 서서 엉뚱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나를 달은 나무라지 않고 어느새 서쪽으로 훌쩍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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