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섬 가는 길의 아스라함이 햇빛 아래 유난히 반짝인다. 눈부심이 더욱 신비로움을 두르고 있는 듯싶다. 뻥 뚫린 온전한 풍경도 좋지만 몽롱하게 반쯤 바라본 후의 여백을 찾아 어서 걸으라는 옛 선비님의 은근한 가르침을 깨우치는 것처럼 환한 마음이 내달린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돈나무의 싱싱함이 우리의 거친 숨을 빨아들인다. 길게 길게 이어지는 섬 속의 계단 길이 멋스럽다.
일부러 물때를 맞추어 정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처음 찾아와 이 등대섬을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열목개에 다다르니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서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해변 길을 돌아온 우리와 다름없이 이곳에서 만났으니 바다는 자꾸만 우리에게 성급함을 줄이라 말하는 듯싶다.
물이 밀려왔다 내려가고 다시 밀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누구나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며 즐거워한다. 물살의 움직임에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장난스레 물길 가까이 다가섰다가 밀려오는 물살을 피해 소리 지르며 달려오기를 반복하는 얼굴들에는 환한 기쁨이 가득하다. 예보한 오후 3시가 지났는데도 물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밀려오는 힘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 또한 낯선 풍경이 안겨주는 신비함이 아닐까. 괜스레 물길과 함께하고 싶다.
아마도 배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인가 보다. 몇몇이 물이 빠져나가는 틈을 이용해 빠르게 건너갔지만, 웬걸 물살은 그냥 다그치며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왜장을 치며 놀라는 사람들~ 그래도 재미있다. 점점 물이 적어지며 굵직한 몽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미끄러웠다. 하나 둘씩 건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조심스레 건넜지만 또 한번 장난을 걸어오는 물살에 내 발도 완전 푹 적시고 말았다. 다행이 예비 양말 한 켤레가 배낭에 있어 갈아 신기는 했지만 운동화의 물만은 어쩌지 못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이 열목개 물길이 있어 이 섬은 더욱 빛이 날 것이다. 하루에 두 번 물 빠짐이 있다지만 그 시간 맞추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그리하여 더 가까이 가 보고 싶은 등대섬은 모든 사람의 연인이었다. 정말 멋지다.
물길을 건너 등대까지 오르는 길 역시 길고 긴 계단길이다. 멀리서 바라보았던 풍경을 이룬 길 위에 서 있는 나 역시 풍경이 될 것이라 여겨지니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이 힘들지만은 않다. 양 옆의 산등성에는 돈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있기도 하였다. 털머위가 꽃을 달고 있기도 하고 까마귀쪽나무라는 낯선 이름들이 이 섬이 지닌 특별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하래의 하얀 등대! 모양새만으로는 단아함인데 바닷길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이다. 말이 없다. 나는 지금 왜 여기까지 왔을까. 배를 탔고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물 빠지기를 기다려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내 행동들은 극히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소함들이 모이고 모여 누구나가 동경하는 등대섬을 만났다. 그렇다. 그 사소한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챙기지 않았다면 나는 등대섬에 오른 기쁨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노라고 우뚝 솟은 등대가 일러준다.
등대를 뒤로하고 등대섬을 내려오는 길,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바다위의 햇살이 아쉬운 작별을 하며 바다위에서 부서진다. 먼 바다위의 작은 섬들이 아스라하다. 아직 내 눈과 마음 안에 들어오지 못한 풍경들이 있다면 남겨 두리라. 그 만나지 못함을 이루기 위해 내 마음은 늘 동동거릴 테니까.
▲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 바다
▲ 물이 빠진 열목개
등대섬에 올라 바라본 풍경
▲ 등대섬의 해안 절벽
▲ 등대섬에서..
왼쪽은 소매물도, 멀리 오른쪽 대매물도
▲ 저 아래 녹색지붕의 건물은 항로표지관리소
이곳에서 바라보는 소매물도의 형태는 거대한 공룡이 앉아있는 모습이라는데
아쉽게도 등대 한 면이 공룡의 머리부분을 막았다.
▲ 등대
▲ 내려오다 뒤돌아 보며...
▲ 열목개의 몽돌
▲ 또 뒤돌아 보고...
▲ 햇살이 있어 더욱 신비로운 섬, 그리고 등대
▲ 거북이 두 마리가 줄서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듯,
▲ 섬을 지키는 꽃
▲ 공룡바위에게 이 섬을 잘 지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 다 내려 와서 다시 바라 봄
ㅡ 하루밤을 머물고 맞이한 섬의 아침풍경 ㅡ
▲ 아침바다
▲ 섬에 있어 더욱 외로운 하늘의 지샌달
▲ 아침 일찍 다시 남매바위까지 다녀오는 길에 만난 동백의 낙화
▲ 오래된 마을 길
언제까지 살아있는 길이 되기를 바램해 본다.
▲ 후박나무 아래의 후박나무 민박집
▲ 털머위와 너무 익어 몸이 상한 호박
▲ 계요등과 돈나무
▲ 이 섬을 떠나며 내가 타야 할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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