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고
산을 휘감고 있는 자욱한 안개는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아마도 이 물방울을 고요히 품고 있다가
새잎들이 파릇파릇 고개 내밀 때 힘들지 않게 하려는 게지요.
내 마음을 맑게 일으켜주는 산책길에서는
촉촉하게 젖어있는 땅의 숨결들이
작은 법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땅 속 싹들의 들썩임이 들리는 듯싶으니
내 마음까지도 들썩입니다.
산책길의 곧음과 굽어짐,
혹은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의 변화를
조금도 힘겨워하지 않는 이 봄기운은
축 쳐진 내 어깨를 펴주며 나를 동동거리게 합니다.
문득 내 발밑의 땅속에 있을
새싹들은 어떤 모습 일까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제각각 다른 모습이겠지요?
땅속의 모습이 이렇듯 제각각일진대,
우리 사람들의 뜻과 생각도
다 다르고 차이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요
숲의 친구들이 아주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나누고
자리를 비켜서며 살아가는 모습은
저를 응원하는 소리 없는 가르침입니다.
나 아닌 타인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참 편한 일이라고 알려 줍니다.
뒷산의 산자고가
흐트러짐 없는 제 모습으로 봄을 알려 줍니다.
수 십 년을 살아오면서도 어쩜 저리도 고운 모습일까요.
양지 바른 산등성 한쪽에 야무지게 자리하고 피어나더니
건너편 이름 모를 묘지 옆의 동백을 손짓하며 부릅니다.
홑 동백이 우아하면서도 탐스런 모습으로
빙긋이 웃으며 화답하는 이 봄 동산은
봄의 수런거림으로 가득합니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화가라면 당장이라도 화선지에 옮기고 싶은 그런 풍경이
잔잔하게 내 마음속을 파고드니,
봄꽃들이 세상구경할 날에 들뜨듯이
내 마음도 조근 조근 들뜨는 봄기운 가득한 날입니다.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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