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은 익숙했던 것들에 낯설음을 올려주곤 한다.
얼마만의 걸어보는 길인가… 길게 굽어 이어진 덕수궁 돌담길을 걷노라니 나의 20대 시절모습이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으니 후다닥 뛰어가 돌려세워 나를 바라보게 하고 싶다. 갖가지 추억들이 나를 일깨운다. 살짝 눈이 쌓인 돌담길… 고즈넉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눈내린 덕수궁 돌담길을 추억과 함께 돌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들어섰다. 전시회 관람하기엔너무나 안성맞춤인 날씨는 멋진 분위기를 안겨주니 마음은 그저 풍선처럼 둥둥 떠오른다.
지난 9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글을 모아 엮은 내용이었는데 난 그 책을 읽으며 고흐라는 화가의 처절한 삶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인관관계가 없는 고독함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특유의 감성으로 가장 인간적인그림을 그려가는 그의 삶이 슬프고 외로워 내 가슴 가득히 흐르는 연민의 느낌은 한동안 내 영혼을 두드리는 듯 했다.
그 감정이 채 식지 않은 11월 어느 날, 고흐의 작품이 올 3월 16일 까지 3개월 동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기사를 보고 꼭 그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두 달여가 지나가고 말았는데 지난 22일 서울에 업무상 일정이 잡혀 있기에 난 주저 없이 시간을 만들어 미술관을 찾았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작은 흥분은 고흐와의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흔적을 느껴 보고 싶은 욕망인지도 모른다. 내 생애 최고의 시절을 보낸 곳에서의 전시회를 추억과 함께 관람하고, 회의 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은 온통 낮에 보았던 고흐의 그림들로 가득했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지. 소망하는 것을 터뜨리기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157p 인용)
내가 알고 있는 화가, 고흐는 해바라기를 즐겨 그렸으며 자기 귀를 스스로 자른 광적인, 지독히 가난한 화가였다는 교과서적인 내용일 뿐이었다. 그 외 나의 작은 관심 하나는 세인들이 그를 '영혼의 화가’ 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영혼! 얼마나 심오하고 멋진 말인가! 책을 읽어가며 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 고흐는 영혼으로 살아간 삶의 소유자였다. 그가 광적 이였다는 이질감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로 인식하면서 자기의 재능을 표출하고자 울부짖는 고뇌의 소리로 바꾸어 들을 수 있었기에 더욱 강렬한 느낌이 다가 왔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늑한 가정을 원하지만 이루지 못한 고흐의 고통과 좌절은 고스란히 내 것으로 함께했다.
이번 전시는 고흐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구성하여 시기 대표작들을 전시하였다. 유명한 그의 해바라기 작품은 단 한 점도 없었다. 국보급인 그의 해바라기는 절대 반출 금지라 한다. 그 어떤 예외도 없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보아온 귀한 작품들은 없었지만 그가 즐겨 마신 술병이 있고 화병에 꽂힌 꽃들이 있었으며 고흐의 자화상들이 있었다. 초기의 스케치작품에 비하면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 머물렀던 정신병원의 정원 스케치는 너무 밝은 색채여서 오히려 진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라 하였다.
10년 이란 짧은 기간 동안 그처럼 많은 그림을 그린 그는 분명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단 하나만의 작품밖에 팔지 못 하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가난하고 배고픈 화가의 외로움을 겪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 라고 말할 만큼 많은 경제적인고통을 받았으나 지금 그의 작품들은 손조차 댈 수 없을 정도의 고가품이다. 아이와 함께 온 아버지 인 듯싶은 분이 그림 설명을 위해 그림이 걸려있는 저지선 안쪽으로 손을 내밀고 설명을 하려하자 안내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제지를 하는 모습을 고흐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켜볼 지 궁금해지기만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그림의 영향력은 20세기 수많은 화가, 예술가들에 선망이 되었음은 물론 그림의 '그’ 자도 따라 갈 수 없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으니 그의 단 한명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의 예언처럼 그의 영혼은 그림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형의 노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오... 난 미래 사람들이 형을 이해할 거라 확신하오.
문제는 그것이 언제냐 하는 것이오.”
전시장 안의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아래 그림들은 구입한 도록의 사진을 스캔한 것들이다.
1. 제목 : 자화상
그는 생전에 여러 장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는 돈이 없어 모델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이 초상화의 모델이 되곤 하였다고 합니다.
2. 제목 :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압생트는 고흐가 프랑스에서 지내던 시절 즐겨 마시던 술의 이름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인기
가 높았다고 하는 값싸고 도수 높은 술이었다 하니 우리나라 소주쯤 될 것 같습니다.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합니다.
3. 제목 :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고흐는 사이프러스나무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사이프러스 나무색과 선이 고흐를 매
료시켰다고 합니다.
4. 제목 : 아이리스
고흐가 발작으로 오랜 기간을 병과 싸운 후 회복되어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 한 작품
이라 합니다. 병과의 싸움을 상징하듯 노랑과 청색이 강렬합니다.
5. 제목 :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낸 노란집 부근의 밤 풍경입니다. 고흐가 가장 좋아
하는 노란과 청색과 별이 있습니다. 노랑은 사랑이고 청색은 무한함이며 별은 희망의 상징
이었다고 합니다. 고흐에게는...
6. 제목 : 우체부 조셉 룰랭
고흐는 이 우체부의 초상을 6점 그렸다고 합니다. 고흐의 친구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초상화의 모델을 두 번밖에 구하지 못한 고흐에게 룰랭의 가족은 초상화의 모델이 되어 주
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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