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밭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여느 산처럼 친숙하였지만
우람한 바위들에 눈이 길들여져서인지 다소 지루함이 느껴진다.
1시간여를 걸으며
빨리 도갑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습지대를 지나니 담장과 지붕이 보인다.
도갑사인가?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걸어가니 도갑사가 아닌 도선수미비 이었다.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도갑사를 충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碑)로
전체 높이가 4.8m에 이르는 거대한 비이다.
바짝 다가가서는 커다란 돌거북의 모습에 움찔 놀랐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보였어도
이 비는 조선 효종 4년 1653년에 완성된, 만드는데 17년이 걸렸다 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비에는 1,500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도선수미비 옆에는 도갑사 부도전이 있었다.
부도전을 뒤로하고 산길을 조금 따르는 듯싶은데 오른쪽으로 비탈진 계단이 높다랗다.
호기심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 오르니 미륵전이다.
미륵전인데, 미륵보살이 아닌 석조석가여래상이 있다. 도갑사 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불경을 드리고 계시는데도 조심스레 사진을 찍긴 했는데 자꾸만 내 행동이 불경스럽게 여겨진다.
조심스런 마음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빠져 나오고 말았다.
미륵전 입구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불신과 광배가 모두 한 개의 돌로 이루어진 특이한 문화재이다.
주련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最勝業遍知 (최승업변지) - 가장 뛰어난 업을 갖추고 두루 아시며
미륵전을 내려와 계곡 위 아담한 다리를 건너니 그제야 도갑사가 보인다.
그렇게 안도의 마음을 안겨주면서도 잠시 쉬어가라는 것인지 작은 정자가 보이고
정자 아래 폭포가 보인다. 가뭄으로 물줄기는 실낱같았지만 자태만은 영락없는 폭포다.
정자지붕의 단풍은 설익은 모습으로 멋을 부리고
작은 소(沼)는 제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낙엽을 가득 품었다.
영암은 도선국사가 태어난 곳이다. 도선은 신라 4대 선승의 한 사람이며 또한 풍수의 대가라고 전해온다. 고려 태조 왕건의 앞날을 예언 해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태어남도 신비함을 안고 있는 도선!! 겨울에 성기동(聖起洞)의 한 처녀가 통샘에서 빨래를 하다가 오이 하나가 관음천을 따라 떠내려 오자 그것을 건져 먹었다. 그 후에 처녀가 아이를 배어서 낳게 되자 부모가 부끄럽게 여기고는 아이를 구림의 국사방 위에 버렸다. 처녀가 가서 보니 비둘기가 내려와 아이에게 날개를 깔아주고 먹이를 갖다 주면서 기르고 있었다. 그 부모들도 신기하게 여겨서 아이를 데려다 기르니 아주 영특하였다. 비둘기숲 즉 구림(鳩林)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월출산을 등진 넓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도갑사는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조선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긴 역사를 지닌 사찰임에도 건물 전체에서 고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1977년의 화재로 많은 것이 소실되었고 1981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도갑사도 천황사도 화재로 인하여 역사성을 잃고 있으니 조금은 아쉬움이 크다. 지금도 사찰 곳곳에서는 보수 내지 증축을 하고 있는 모습에 사찰 고유의 고즈넉함을 조금은 빼앗긴 듯싶으니 그냥 경내가 휑한 느낌이 컸다. 오래 오래 깊은 역사를 잃지 않는 사찰이기를 기원해 본다.
일주문
해탈문(특이한 양식으로 국보 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
대웅전과 오층석탑 나무의 조화로움이 장관이다.
대웅전
대웅전이 마주하는 풍경
대웅전 벽화
대웅전 뒷모습
주차장에 내려오니 우람한 팽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또한 긴 연륜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니
월출산과 함께 명물이 되어 도갑사를 지키고 있었다.
도갑사 넓은 경내에서 나무보다 멋진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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