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내 마음을 간벌(間伐)하다

물소리~~^ 2013. 10. 10. 16:33

 

 

 

 

 

 

   출근준비를 마치고 자투리 시간을 즐기려 막 컴퓨터를 켜려는 순간, 전화 진동음이 길게 울린다. 무어지? 궁금함과 반가움으로 얼른 전화기를 꺼내 보았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으로 덮어버리고 다시 의자에 앉으려는 데 또다시 진동음이 들린다. 또 얼른 전화기를 들어보았지만 역시 아무 표시도 없었다.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괜한 마음 수런거림이 일렁인다. 또다시 들리는 진동음~ 그제야 생각이 난다. 우리 뒷산에서 며칠 전부터 간벌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기계음이 닫힌 창문을 통하고 또 방 하나를 건너오면서 아주 약하게 들려온 까닭이었다.

 

기계음을 전화기 진동음으로 듣고 있었으니 내 무엇에 대한 기다림의 열병이라도 앓고 있었을까. 어제 아침의 마음을 떠올리며 오늘의 산책길 풍경이 궁금해진 마음은 조금 늦게 일어난 시간이었지만 기어이 나를 산책길로 이끈다. 오솔길 풍경은 어지러워져 있었다. 군데군데 베어져 토막 난 나무들이 하루사이에 말라버린 바삭한 잎을 달고 누워있었다. 나무들의 모습도 안쓰러웠지만 어수선한 오솔길 주변에 내 마음이 바람에 날리듯 흔들린다.

 

병든 나무를 베어내고 무성한 잡목들을 제거해 좋은 수목을 육성키 위한 간벌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병들었다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없애야 하는 나무들을 점찍어 흰 천으로 매듭을 묶어 놓았었다. 베어져야하는 선택을 받았을 때 나무들은 그 마음 속 풍랑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드문드문 나무줄기에 흰 천을 묶어 놓은 것을 보고 한순간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글씨 A를 연상했었다. 사람들이 보내는 비난의 눈길에도 굴하지 않고 헤스터는 부정한 행위를 뜻하는 가슴에 달린 글자 A를, 참회의지를 묵묵히 지켜냄으로 천사를 뜻하는 A(Angel)로 스스로 승화 시켰다. 그 아름다운 승화의 이야기는 명작이 되어 길이 전해지고 있다. 베어진 나무도 그처럼 자신의 운명에 집착하지 않았다. 베어져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마음 속 풍랑을 이겨냈을 것이다.

 

아, 그렇다면 어제 아침 나에게 진동음으로 들린 것은 기계음이 아닌 나무들의 애처로운 호소였는지도 모르겠다. 늘 새벽마다 지나치며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내 말을 들어주기도 한 그 정을 못 잊어 자신들의 아픔을 알려주려 한 신호음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막연한 부름에 내 마음은 열병처럼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나무 곁을 지나노라니 그들이 가슴에 품었던 못 다한 소망들이 아직도 숲속을 맴돌고 있었다는 듯 와락 나에게 달려든다. 내가 미처 들어주지 못한 눈물과 절규를 대신 받아 피어날 꽃 한 송이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제 몸 쓰러지면서 남겨진 숲의 친구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남아 있는 나무들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자신은 비록 못난 모습이지만 잘난 모습을 응원해주며 서로를 위하여 양보하는 마음을 키웠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삶으로부터 초연하게 하였을까.

 

나무들은 베어져 넘어있는데 그 곁에서 울어대는 풀벌레소리는 여전하다. 저 산 아래 인적 드문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리도 무심하고 컹컹 개 짖는 소리도 아련하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내 머리를 번개처럼 지나는 생각이 있다. 베어진 나무는 내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닭울음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나무와 닭! 목계(木鷄)였다. 닭싸움을 좋아했던 중국의 주나라 임금 선왕은 투계 한 마리를 조련사에게 최고의 싸움닭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40일이 지난 후 조련사는 투계를 돌려주며 말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덤벼도 반응이 없습니다.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목계' 같습니다. 덕이 충만해서 그 모습만 봐도 싸우지 않고 도망갈 것입니다.” 싸움을 해야만 하는 투계였지만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베어져야 하는 나무로 낙인 되어 흰 천을 두르고 있어야 했던 나무들은 패자의 모습이었지만 마음 안에 목계 한 마리를 키우면서 의젓하게 살아왔던 것이 분명하였다. 목계의 경지를 배우고 익힌 나무들이였기에 베어져 넘어져 있으면서도 의연한 모습이다. 이제 숲은 조금 넓어졌고 남은 나무들의 행동은 더 많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베어져 넘어진 나무를 나의 목계로 삼아야겠다. 기계음을 진동음으로 받아들였던 내 마음안의 욕망을 나의 목계를 거울삼아 간벌하고 싶다. 하여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덕을 쌓아가는 남은 생이었으면 좋겠다. 베어진 나무들로 인하여 조금 더 휑해진 숲에 산 아래의 조명들이 깊숙이 숲 속을 파고들었다. 따스한 세상의 마음까지 끌어 들일 수 있는 여유를 남겨준 나무들의 품이 내 유년의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1010)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변주곡  (0) 2013.10.21
풀꽃에 마음을 씻고  (0) 2013.10.17
억새와 바람 그리고 음악  (0) 2013.10.08
가을 소묘  (0) 2013.10.01
단순함이 지닌 최고의 경지  (0) 201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