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동을 걸자마자 밤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라디오는 그렇게 제 말부터 시작한다. 어제 주차하면서 라디오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차 시동을 멈췄나 보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긴 밤 내 얼마나 자신을 담금질했을까. 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반갑게 대해줄 수 있을까. 갇혀 있던 마음이 풀리는 화통함에 풋 웃음이 나오는 찰나 음악방송 진행자의 멘트가 귀에 들어온다. 삶을 자기 마음대로 관장할 수 있다면, 또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수 없기에 기도도 필요하고 음악도 필요하다는 내용의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 저리게 한다.
내가 나를 다스리기 위하여 음악을 필요로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그런 행위 자체에서 묻어 나오는 선함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기도를 함으로서 마음이 선해지고 음악을 들음으로써 마음이 선해진다는 것은 그 행위에서 전해지는 선의 느낌으로 스스로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대한 인연의 장이다, 모든 것이 인연으로 나타나고 인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 선인가 악인가 하는 문제는 굳이 성선설 성악설을 따지지 않아도 오래 전부터 다루어진 풀지 못한 문제이다. 어느 면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선도 악도 아니며 선과 악은 인연에 따라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착한 인연을 만나면 착해지고 나쁜 마음을 만나면 나빠진다. 자연을 바라보며 선해지는 까닭은 자연이 주는 선함에 기인하듯 나로 인하여 그 누군가가 선함도 악함도 느낄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런 느낌을 전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차 안에 앉아 ‘나 자신을 다스린다.’ 라는 화두를 안고 음악방송 진행자가 선택하여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이제 그만 엑셀라이트를 밟는다. 산자락을 끼고 도는 오르막길을 차고 올라 한 숨 돌리며 살짝 돌아 내려오는 에움길에 맞닿은 산등성 풍경은 참으로 선한 마음을 안겨준다. 바람이 조금씩 가을을 가져다주는 요즈음 더 자주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밤나무이다. 제법 굵은 밤송이들이 아롱다롱 달려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풍요로움과 안정감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밤나무의 무성한 초록 잎 사이로 연둣빛을 머금은 밤송이들의 조화는 참으로 예술이다. 그들의 차림이 지닌 짙음과 연한 색의 대비는 아주 센스 있는 감각의 옷차림처럼 느껴진다. 짙은 초록색 잎이 땀방울과 애환이 묻혀있을 밤송이가 잘 여물어지도록 영양을 공급해 주기위한 차림이라면, 밤송이들은 자기를 지켜주는 잎에 겸손함을 보이듯 그들보다 한 발짝 떨어진 자세의 연한 빛을 보이며 스스로의 성숙한 빛깔로 자기의 모습을 다스리고 있다. 그들의 선한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선 해질 수 있음은 그들 스스로 선한 모습을 지녔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렇다는 말의 뜻처럼 스스로 다스릴 줄 알지만 우리 사람은 (人) 늘 어딘가에 기대서야 온전한 길을 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매년 계절의 문턱을 넘어설 때면 변화되는 계절보다도 그들로서는 방관자일 뿐인 내가 더욱 마음 흔들리는 듯하다. 계절은 매번 변하여도 늘 한결같음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변덕스럽고 호들갑스러운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서 귀한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그들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 의미라는 것이 경험으로 얻은 자기만의 진실이기 때문에 지극히 자기중심적일 수 있겠지만 삼라만상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 했으니 자연에 기대어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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