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내려와 살게 된지도 어언 27년이 지나 올 하반기가 되면 28년이 된다. 동안 내 고향이 아닌 곳, 시가 쪽의 고향인 곳이라는 낯선 감정 때문에 정 붙이고 살아가는데 참으로 인색한 세월을 살아왔다. 인색함이라는 것은 내 주변의 환경을 아우르고 살펴보는 마음이 적었다는 뜻이다. 내 안의 나만를 보듬고 지내온 시간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삶에 싫증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바라보면 소소함 속에 내 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연을 바라볼 수 있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이야기들을 간직한 역사와 마주 할 수 있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곳들은 애써 나를 부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본질을 지닌 채 침묵으로 세월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우연히 그런 장소를 알게 되거나 만나는 경우면 나의 마음과 머리는 온통 그 존재와 친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오른다.
우리 고장에는 향교가 두 곳이 있다. 임피향교와 옥구향교다. 임피향교는 예전에 답사를 한번 다녀왔지만 그나마 집에서 가깝다 할 수 있는 옥구향교는 여태 찾아가지 못했었다. 배롱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는 풍문만 듣고 있었기에 배롱나무 꽃이 필 때면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했어도 발품을 팔진 않았다. 천지에 배롱나무 꽃이 한창인 일요일 오후, 연꽃 만나고 오는 길에 옥구향교에 들렀다.
향교란 조선시대 때 유학을 교육하기위하여 지방에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국립학교에 해당된다. 항교는 공자(孔子)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인 문묘와 그에 속한 학교( 명륜당) 로 구성된다고 하니 아마도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학교라 여겨진다.
옥구향교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뒤로는 솔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단아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홍살문 사이로 보이는 향교를 조심스레 싸안고 있는 듯 피어있는 배롱나무의 자태가 황홀하다. 성급한 마음으로 빠르게 다가간 향교! 어딘지 모르게 엄숙함이 전해온다. 외삼문 중 열려있는 한쪽문 안으로 들어서니 아, 오랜 세월동안 참 잘 가꾸어온 건물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옥구향교는 1403년 태종 때 처음 세워졌는데 인조 때(1646년) 지금 자리로 옮겨 앉았다. 대단한 세월이다. 국보 1호인 남대문과의 연륜의 차이는 5년밖에 되지 않는다.
향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금세 배롱나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건물과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다는 듯, 배롱나무들은 제멋대로인 듯싶으면서도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면서 꽃분홍 꽃숭어리들을 아낌없이 피워내고 있었다. 멋진 나무는 무거운 꽃가지를 살짝살짝 지붕에 걸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건물들은 꽃이 둘러주는 아늑함으로 더없는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둘은 마치 천생연분처럼 어울리고 있었다.
대성전, 단군성묘, 명륜당, 전사재, 문창서원, 자천대, 비각 등이 저마다 사연과 역사를 안고 아담한 모습으로 모여 있다. 그중 자천대는 최치원이 올라앉아 글을 읽었다는 곳인데 보수공사중인지 어지러웠지만 우뚝 솟은 지붕의 의연함에 눈길이 머문다. 이 지역이 최치원과의 인연이 깊은 곳이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신라의 무관으로 지금의 내초도에 수군장으로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때 최치원이 태어났다고 한다. 선연리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최치원은 자천대에 올라 글을 읽었다고 한다. 이 자천대가 1941년경 비행장 공사 때 헐릴 위기에 있었는데 지역의 유림들이 합심하여 옥구향교 근처로 이전하였고, 1964년에 현 장소에 옮겨졌다고 한다. 또한 새만금방조제 옆에 있는 신시도 대각산 월영봉은 신라 때 최치원이 단을 쌓고 글을 읽은 곳이며, 글 읽는 소리가 서해 건너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다.
이곳 향교에서 또다시 최치원의 흔적을 만나니 우리 아이들 성씨인 최家와 인연이 있는 듯싶으니 괜한 자랑스러움이 앞선다. 옥구향교! 이곳 지방의 유교문화와 양반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 지금도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석전대제가 봉행된다니 문화적 가치가 지대함을 알 수 있다.
배롱나무 꽃에 이끌려 나아가서 두루 만난 역사의 이야기들마저 꽃에 물들었을까. 그 이야기들에 내 마음도 훈훈한 꽃분홍으로 일렁이며 충만함이 그득하다. 늘 낯선 어설픔으로 한 다리 건너 마음을 내려놓으며 생활했던 곳, 이제 우리 아이들의 성씨에 귀함을 얹어주는 그런 꽃분홍 배롱나무의 마음으로 서서히 물들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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