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책이었다.
살아가며 어쩔 수없이 취해야하는 차선책이 때론 더 큰 행운을 안겨주는 경우가 있었으니 나의 이번 소백산 산행이 그러했다. 일찍이 1박 2일 여정으로 설악산을 계획하였으나 집중호우로 입산 통제가 내려 모처럼의 기회를 잃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돌리고 돌린 생각으로 그럼 소백산에 다녀오자는 내 의견에 남편이 적극동조해주니 잔잔한 설렘이 맴을 돈다.
당일 산행을 생각했지만 역시나 영남과 호남을 갈라놓는 소백산맥의 중심산인 소백산 주차장까지 이동시간만도 5시간여가 소요되니, 당일산행이 어려울 것 같아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였다.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선 여행길 자투리 시간에 영주의 소수서원을 갈 수 있었으니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떠나 온 곳이 멀어지며, 내 가고자 한 곳이 점점 가까워지며 언뜻 언뜻 스쳐 지나치는 길목에서 풍기, 순흥 등 소백산 자락의 지명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풍기에 들어서니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있다. 저 봉우리들 중 하나가 내가 올라야 할 비로봉일까? 이제 막 기우는 햇살아래의 봉우리들의 기상이 늠름하다. 저 산자락 어느 곳에 펼쳐진 죽령, 조령, 추풍령이 굽이굽이 품고 있는 고갯길마다에 서민들과 선비들의 애환이 서려 있을 것이니 어서 내 발자국을 그곳에 남기고 싶다.
숙소 바로 옆이 희방계곡 이었다. 계곡물소리가 어찌나 맑고 시원한지 마치 별천지에 와 있는 듯싶다. 잠을 자다가도 계곡물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하고 몇 번이나 잠을 깨곤 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달과 별을 보며 다시 잠을 청하곤 했지만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4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희방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차가 두어 대 주차 되어있었지만 사람들은 없었다. 오직 우리뿐이었다. 주차장에는 그늘을 내려주는 듯, 키가 높은 노각나무의 꽃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밤새 우리를 기다리며 꽃 카페트를 준비했을까. 아담한 꽃송이들에 내 욕심을 키운다.
5시 10분 드디어 소백산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 얼마나 상쾌하고 가뿐한 마음인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새벽기운이 유난히 경이롭다. 소백산은 오늘 나를 경이로움으로 안내해 주리라 굳게 믿는 마음이다. 소백산의 정기를 가득 품은 나무와 꽃, 그리고 물소리를 벗 삼으며 그들로부터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좋았다.
조금씩 밝아지긴 하지만 구름이 낀 날씨다. 오늘 비 예보가 있는데… 우려의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 안심도 되었다. 작렬하는 햇살을 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복 받은 사람일거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또박또박 천천히 걷노라니 계곡 물소리가 점점 힘이 넘쳐나고 있다. 그 힘찬 물소리의 주인공은 희방폭포였다. 이 여름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에 마음 구석구석까지 씻어본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위에서 옆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물길이 제 각각이다. 계곡은 폭포를 전시하는 갤러리였다. 산길을 따라 걸으며 숨겨진 폭포를 만나는 나는 어느새 우아한 관람자가 되어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동참해 본다.
희방폭포
폭포를 뒤로하고 자꾸 깊어지는 산길에는 산수국이 드문드문 보인다. 우리 동네의 산수국은 꽃송이가 커다란데 이곳의 꽃은 욕심을 비운, 작지만 알찬 마음이듯 꽃송이가 작고 앙증맞았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울창한 숲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문득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하얀 안개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숲은 쉽게 비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더 많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한다. 하지만 호주머니에 구겨 넣듯 소소한 풍경일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으니 자꾸만 셔터를 누른다.
금방이라도 한점 뚝 떨어질것 같다. 서로 엇갈리며 이루는 삼각구도의 안정감 삼각은 또 하나의 역삼각을 품었다. 어느 화가가 그렸을까 무수히 떨어진 노각나무 꽃~~ 그에 나는 손떨림 기법(?)으로 칠을 했다. 나무는 외로웠다. 기나긴 세월동안 얼마나 외로움이 컸을까. 제 몸 스스로 궁을 짓고 소꿉놀이를 하며 이 깊은 산속에서의 외로움을 달랬다. 저 멀리 산허리를 감도는 구름 산등성은 구름 속에 숨어 숨을 돌리고 소나무는 궁금한 듯 내려 보고 있다. 어느새 2.6km를 걸었다. 산속에서의 2.6km의 고단함을 이정표는 말없이 달래주고 있다. 바위 오르막길의 힘듦을 알고 있을까. 바위들은 때론 다양한 모습으로 길목을 지키며 우리의 거친 숨을 받아낸다 아!! 동자꽃!! 다소곳한 모습을 감싼 환함. 정말 예뻤다. 누구에게 배웠을까! 자신의 화려함을 낮추는 겸손함을~~ 그만 꼬옥 끌어안고 싶었다. 점점 높이 오를수록 나는 점점 더 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산이 나에게 내준 아주 좁은 오솔길!! 그만큼이라도 허용해준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양 옆으로 키를 훌쩍 넘은 나무들이 나를 보호해주는 듯싶다. 나에게 인사하는 털중나리꽃 연화봉에 이르는 길은 천상의 화원이었다. 제2연화봉 1,383m에 도착! 나는 지금까지 3.7km를 왔고 앞으로 4.3km를 올라야 비로봉 정상이라 알려준다. 느긋한 마음으로 앉아 아침식사를 하였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휘돌아 나가는 연화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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